
영국박물관이 한국미술 대규모 특별전을 열었다. 42년 만이다. 1984년 '한국미술 오천년' 이후 런던에서 이만한 규모로 한국 미술이 모인 적은 없었다. 전시는 고대 유물에서 조선시대 회화를 지나 백남준에 닿으며, '한국미술 2000년'이라는 틀로 소개됐다.
소개된 출품 규모는 100건이다. 국보 10건과 보물 13건이 들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함께 건너갔고,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도 포함됐다.
영국박물관과 한국 유물의 관계는 2000년부터 다져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을 빌려 한국실을 운영해온 세월이 그만큼이다. 상설 한국실이 꾸준히 돌아가는 곳에서 특별전을 다시 연다는 것은 전시 하나를 추가하는 일과 다르다. 오래 보관해온 관계 위에 새 문장을 얹는 작업에 가깝다.
눈에 띄는 쪽은 명단보다 배열이다. 정선과 이중섭과 백남준, 그리고 서도호가 같은 전시의 장 안에 들어왔다. 시대로 나누면 이들은 서로 멀다. 창의의 연속성이라는 말로 묶으면 거리는 다르게 읽힌다.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런던까지 갔다. 비 갠 뒤 젖은 화강암 덩어리를 먹으로 눌러 그린 그림이다. 종이와 비단에 올린 그림은 빛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조도와 노출 시간을 합산해 전시 기간을 조절하는 일은 보존 담당자의 몫이고, 국보급 회화일수록 그 셈이 빡빡해진다. 런던행 비행기를 끊는 관람객에게는 어떤 그림이 어느 시기에 걸려 있는지가 실질적인 변수다.
보존과 활용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유물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면 포장과 운송과 환경 관리에 비용이 붙고, 손상 위험은 0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보내는 쪽을 택하는 이유는 전시장에서만 발생하는 해석이 있기 때문이다.
앤 공주가 전시를 관람했고, 박물관 측은 관심과 기대가 높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전시 관련 인터뷰에서 2천 년에 걸친 한국의 창의성을 언급했다. 영국박물관에서 아시아 소장품을 맡고 있는 제시카 해리슨홀이 전시를 설명했다.
왕실 인사의 방문과 재계 총수의 인터뷰 뒤에는 기획자들이 감당해야 할 주장이 남는다. 토기를 빚던 손과 전자 신호를 다루던 손을 한 흐름으로 이을 수 있는가. 전시는 그렇다고 답했고, 100건의 배열이 그 답의 근거다.
런던에 갈 일이 있다면 특별전 관람 뒤 한국실까지 걸어보길 권한다. 특별전이 2000년을 압축해 보여준다면, 한국실은 2000년부터 쌓인 대여의 흔적을 보여준다. 입장 조건과 전시 일정은 박물관 공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