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쉼

마른 가지 끝에 걸린 별
잎 진 가지 끝과 별 사이의 빈 하늘을 오래 보며 턱의 힘을 푸는 짧은 밤의 기록.
배진경 · 2026. 09. 11

하늘색 전지가위와 잎 한 장
하늘색 전지가위 날 사이에 잎 한 장이 물린 한낮, 손끝의 속력이 먼저 줄어든다.
배진경 · 2026. 09. 08

전나무 사이 흙길을 걷다
안개가 끝을 지운 흙길에서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따지던 마음이 잠시 멈춘다. 오늘은 그늘 아래 스무 걸음.
배진경 · 2026. 09. 04

창밖 능선과 흐트러진 이불
이불이 접힌 그대로 남은 다락방에서, 몸을 일으키기 전 한 번의 기지개를 떠올린다.
배진경 · 2026. 09. 01

한쪽으로 누운 억새
한쪽으로 누운 억새와 색 빠진 회색 하늘 사이에서, 지나가는 것을 삼 분만 눈으로 좇아보는 흐린 낮의 기록.
배진경 · 2026. 08. 23

빈 벤치 둘과 겨울 볕
잎을 떨군 나무 사이로 해가 걸린 저녁, 볕이 닿는 창가에 오 분 서서 손등이 데워지는 순서를 지켜보는 짧은 쉼.
배진경 · 2026. 08. 20

빈 해먹, 눈꺼풀 십오 분
초록 차광막을 등지고 걸린 그물 해먹처럼, 잠들지 않고도 하루 한 번 눈꺼풀을 덮어두는 십오 분에 대하여.
배진경 · 2026. 08. 19

페달을 반만 밟는 저녁
주황빛 강가에서 자전거를 세운 사람처럼, 반 바퀴만 굴리고 나머지는 흘러가게 두는 저녁.
배진경 · 2026. 08. 13

가로등 세 개가 켜진 산책로
어둑해진 공원에 가로등이 하나씩 켜지는 시간, 걸음의 보폭을 조금 줄여 걷는 저녁 산책을 이야기한다.
배진경 · 2026. 08. 06

늙은 나무 둘레를 한 바퀴
굵은 줄기 하나에서 갈라져 나간 가지들 아래를 천천히 걸어보는 여름 한낮의 삼 분.
배진경 · 2026. 07. 31

흔들리는 불꽃을 삼 분 동안
불꽃이 흔들릴 때 눈의 초점과 턱의 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어두운 방에서 삼 분 동안 지켜보는 짧은 연습.
배진경 · 2026. 07. 30

손이 뜨는 동안 머리는 쉰다
뜨개하는 두 손을 담은 사진 한 장에서, 손이 동작을 아는 일이 머리를 어떻게 쉬게 하는지 들여다본다.
배진경 · 2026. 07. 22

빈 레인에서 숨 고르기
사람 없는 새벽 수영장의 레인 로프를 보며 조급해진 숨을 가늘고 길게 흘려보내는 삼 분짜리 연습을 적었다.
배진경 · 2026. 07. 21

커튼 두 폭이 열어 놓은 창
창을 손가락 두 마디만큼 열고 세 번 숨을 세는 동안, 어깨와 턱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가만히 지켜보는 아침.
배진경 · 2026. 07. 18

마른 가지 끝에 걸린 별
나무 실루엣 위로 별이 흩어진 여름밤, 목덜미를 열고 하늘을 오래 바라보는 짧은 시간을 이야기한다.
배진경 · 2026. 07. 17

촛불 옆 작은 사발과 나무젓가락
촛불 하나가 겨우 밝히는 저녁 식탁에서, 첫 숟갈을 늦추는 짧은 시간에 대하여.
배진경 · 2026. 07. 14

빗방울이 흐려놓은 간판들
물방울에 초점을 내준 유리창을 보다가, 종일 무언가를 또렷하게 보려 애쓰던 눈이 어깨와 함께 조금 내려앉는 일 분에 대하여.
배진경 · 2026. 07. 13

김 오르는 웅덩이에 어깨를 담그면
들판 한가운데 김 오르는 웅덩이를 보며, 어깨를 물에 맡기는 삼 분을 떠올린다.
배진경 · 2026. 07. 11

흰 잔에 물이 떨어지는 동안
창가 흰 찻잔 위로 김이 오르는 몇 초 동안,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는 이야기.
배진경 · 2026. 07. 09

흰 헤드폰을 쓰고 소파에 기대어
헤드폰을 쓴 채 소파에 몸을 맡긴 사진 한 장에서, 눈 감고 소리를 세는 짧은 쉼을 꺼내본다.
배진경 · 2026. 07. 08

물가에 놓인 나무 벤치 하나
잔물결이 이는 호수를 향해 비어 있는 벤치가, 잠시 멈춰도 된다고 말해 준다.
배진경 · 2026. 07. 06

모래를 적시는 얕은 파도
얕은 파도가 모래를 적셨다 물러나는 동안, 호흡도 같은 박자를 따라간다.
배진경 · 2026. 07. 03

그물 해먹에 눈을 감다
성긴 매듭 사이로 햇빛이 빠져나가는 오후, 잠들지 않아도 되는 열다섯 분의 눈 감기에 대하여.
배진경 · 2026. 06. 22

밀가루 덮인 철판 위 반죽 넷
화덕의 붉은 빛과 밀가루 냄새가 번지는 부엌에서 호흡이 한 박자 늘어지는 시간.
배진경 · 2026. 06.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