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SG 공시 담당 임직원 100명에게 무엇이 가장 어렵냐고 물었더니 63%가 협력 업체 데이터를 측정하고 모으는 일을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이 조사가 공개된 같은 날, 금융위원회 권 차관은 스코프3 공시 면제 대상을 저탄소 업종의 중견기업과 대기업까지 넓힐 수 있다고 거론했다.
스코프3은 기업 울타리 밖에서 생기는 배출량이다. 원재료를 납품하는 협력업체, 제품을 실어 나르는 물류, 소비자가 쓰고 버리는 단계까지 포함한다. 자기 공장 굴뚝과 전기 사용량만 집계하면 끝나는 스코프1·2와 성격이 다르다.
집계 범위가 자기 회사 밖으로 나가는 순간, 데이터를 쥔 쪽이 수십에서 수백 개 거래처로 흩어진다. 63%가 협력업체 데이터 취합을 어려움으로 꼽은 것도 이 지점이다.
금융위가 2026년 7월 내놓은 ESG 공시 기준 적용 방안은 면제 요건을 두 조건의 교집합으로 뒀다. 소기업이고, 동시에 고탄소 배출 업종에 속하지 않아야 빠진다. 권 차관 발언은 이 교집합 가운데 기업 규모 조건을 느슨하게 푸는 쪽을 가리켰다. 배출량이 적은 업종이라면 덩치가 커도 스코프3 집계 의무에서 제외하자는 얘기다.
저탄소 업종의 대기업일수록 공급망이 길다. 그 기업이 스코프3을 집계하지 않으면 협력업체 배출량을 누구도 합산하지 않는 구간이 생긴다. 반대로 집계를 밀어붙이면 측정 부담은 공시 의무가 없는 중소 협력업체로 내려간다.
저탄소와 고탄소를 나누는 선이 어디인지, 중견·대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가를지는 업종 분류 코드와 배출량 기준선이 공개될 때 드러난다. 그 선이 공시 대상 기업 수를 결정한다.
함께 거론된 장치가 하나 더 있다. 기업이 성실하게 공시했다면 수치가 뒤에 틀렸다고 밝혀져도 책임을 묻지 않는 면책, 이른바 세이프하버다. 스코프3은 추정과 가정이 섞여 들어가는 항목이라 나중에 수치가 바뀌는 일이 흔하다. 면책 없이 의무만 얹으면 기업은 보수적으로 쓰거나 아예 공란으로 남긴다.
민간에서는 검증 분야의 움직임이 나왔다. 디지털이에스지얼라이언스가 한국이에스지경영개발원과 ESG 공시 및 공급망 탄소관리 분야의 검증·인증을 연계하는 협약을 맺었다. 공시 컨설팅과 디지털 솔루션 검증 인프라를 잇고, 탄소중립 신규 사업도 함께 들여다본다는 내용이다.
의무화의 실효성은 공급망 어디까지의 배출량이 누군가의 장부에 올라오느냐에 달려 있다. 면제 범위를 넓히면 장부에 오르지 않는 구간이 늘고, 좁히면 측정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곳까지 의무가 번진다. 금융위가 저탄소 업종의 분류 기준과 면책 요건을 함께 내놓을 때 그 범위가 정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