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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글씨로 걸린 '일반시국은', 박중양의 유묵이었다

김범수·Đăng 2026-09-08 18:00 KST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 표기 정정하고 검증 미흡 사과
유물에 붙는 이름표 한 줄이 그 물건의 기억을 결정한다
유물에 붙는 이름표 한 줄이 그 물건의 기억을 결정한다 / ⓒ 브레스저널

국립중앙박물관이 9월 7일 결론을 내놨다. 애국지사의 글씨로 소개했던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은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1874~1959)이 쓴 것이다. 박물관은 기본 책무가 미흡했다는 취지로 사과했다.

유묵은 처음에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걸렸다. 동명이인이었다. 이름이 같다는 사실 하나가 붓 자국의 내력을 통째로 뒤집었다. 한자 다섯 글자, 밥 한 그릇이 곧 나라의 은혜라는 뜻을 담은 이 글씨는 '우리들의 밥상' 특별전에 놓였다.

글씨를 쓴 손이 누구였는지는 종이에 남지 않는다. 종이에는 획의 굵기와 번짐, 그리고 그 옆에 사람이 적어 붙인 이름표가 남는다.

박물관 유물의 신원은 대개 그 이름표에서 시작된다. 관람객은 유리 진열장을 들여다볼 때 획부터 보지 않는다. 이름을 읽고, 그 이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과한 뒤에 획을 본다.

애국지사라는 넉 자가 붙었을 때와 박중양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같은 문장은 전혀 다르게 읽힌다. 획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애국지사의 유족은 전시를 보러 왔다.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잘못 붙은 이름표를 마주하고 선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사안은 충분히 심각하다.

이번 일로 유물 검증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이 인물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단계에서 걸러내지 못했다. 검증은 유물을 사들이거나 기증받는 시점, 등록하는 시점, 전시로 꺼내는 시점마다 반복해서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어느 지점에서 이름이 미끄러졌는지는 박물관이 밝혀야 할 몫으로 남았다.

보존과 활용은 서로 충돌한다. 유물을 창고에 두면 이름표가 틀릴 일도 없다. 꺼내서 이야기를 붙이는 순간 위험이 생긴다. 그럼에도 박물관이 유물을 꺼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기억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기억이 만들어지는 곳이기에 잘못된 이름 하나가 개인의 생애 전체를 뒤엎을 수도 있다.

박물관이 이번에 내놓은 것은 정정과 사과다. 뒤이어 나와야 할 것은 같은 종류의 오류가 다른 진열장에도 남아 있는지에 대한 답이다. 이름이 같은 인물, 기록이 성긴 시기의 서화는 이 유묵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를 무료로 연다. 다음에 그곳에 간다면 유물보다 이름표를 한 번 더 읽어보길 권한다. 누가 썼다고 적혀 있는지, 그 표기를 어떤 근거로 확정했는지. 진열장 안의 물건은 침묵하고, 설명은 전부 그 옆의 작은 종이가 떠맡는다.

김범수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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