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부가 지원한 세계유산 소개 책자에서 조선인 강제동원이 빠졌다. 책자는 사도광산과 군함도를 소개하면서 두 곳에 동원된 조선인의 노동을 싣지 않았다. 일본의 유네스코 가입 75주년을 기념해 만든 책이다.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에서도 강제동원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런 일이 3년째 이어졌다.
2024년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를 때,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해석하고 전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이 내건 약속은 두 동사로 요약된다. 해석하겠다고 했고, 전시하겠다고 했다. 이번 책자와 추도식에서는 어느 쪽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 약속은 한국 정부의 요구에서 나왔다. 한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을 포함한 역사 전체를 현장에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등재를 추진하던 때부터 일본을 향한 비판도 따랐다. 일제강점기까지 담아야 할 광산의 이력을 에도시대 금광의 역사로 좁혀 보여준다는 지적이었다.
사도광산에서 캐낸 금은 녹슬지 않는다. 오랜 세월 공기와 물에 닿아도 누런 광택이 변하지 않는 금속이다. 사람의 기억은 그렇지 못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흐려지고, 기록하는 쪽이 골라 쓰면 고른 내용만 남는다.
이번 책자는 산업화 성과를 비롯해 일본의 영광스러운 면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 역사 위주로 소개됐다. 등재 때 제기된 비판과 같은 구성이다.
군함도는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에 속한 섬이다. 책자의 군함도 항목에서도 조선인의 노동은 빠졌다.
추도식도 약속의 일부였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광산에서 일한 모든 사람을 기리는 행사로, 일본이 등재를 추진하며 한국의 협조를 얻는 과정에서 합의됐다.
올해 추도식에는 약 70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30분가량 진행됐다. 행사에서 강제동원은 3년째 언급되지 않았다.
기념 책자는 본래 축하하는 글이다. 유네스코 가입 75주년을 맞은 나라가 자랑할 만한 유산을 골라 싣는 일을 탓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세계유산 명부에 오른 장소의 이야기는 한 나라의 자부심만으로 채울 수 없다. 일본은 2024년에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역사를 담겠다고 했다.
책자와 추도식에서 빠진 이야기가 사도광산의 현장 전시에는 얼마나 담겼는지, 한국 정부가 계속 살펴야 할 일이다.
일본은 또 다른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새 후보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사도광산과 군함도에서 한 약속을 어떻게 지켰는지도 함께 따져 보게 될 것이다.
사도광산을 찾을 일이 생긴다면 현장의 설명을 끝까지 따라 읽어 보길 권한다. 금광의 이야기가 에도시대에서 끝나는지,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보낸 시간까지 이어지는지는 그 갱도 옆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