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제주, 유산 곁의 담장을 낮추다

루츠·입력 2026. 03. 12. 오후 3:16:00
도지정문화유산 150곳 건축 기준 손질, 13일 고시부터 효력
유산의 담장과 마을의 지붕이 맞닿은 제주의 경계
유산의 담장과 마을의 지붕이 맞닿은 제주의 경계 / ⓒ 브레스저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도지정문화유산 150곳을 둘러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의 건축행위 허용 기준을 새로 정했다고 2026년 3월 10일 발표했다. 이 가운데 100곳의 기준이 느슨해졌다. 새 기준은 3월 13일 도보에 실리는 날부터 효력을 갖는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문화유산위원회가 건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허가 여부를 정하는 제1구역이다. 3.76㎢였던 면적이 2.25㎢로 내려앉는다. 줄어드는 폭은 40% 남짓으로, 축소율을 40.1%로 계산한 쪽과 '40%가량'으로 표기한 쪽이 갈리지만 두 절대 수치는 동일하다.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은 유산의 지정구역 경계에서 300m 안쪽에 그려지는 띠다. 이 띠 안은 규제 강도에 따라 셋으로 나뉜다. 제1구역은 개별 심의를 받고, 제2구역은 유산별로 정해진 건축 최고높이를 지켜야 하며, 제3구역은 도시계획조례를 비롯한 일반 법령의 적용을 받는다.

손질의 결이 잘 보이는 사례가 대정향교다. 16만3611.1㎡였던 제1구역이 12만4544㎡로 조정된 것으로 파악된다. 지정구역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 각각 20m까지만 개별 심의 구역으로 남기고, 남쪽 도로를 낀 구간은 높이 규제 구역에서 일반 법령 구역으로, 뒤편 산지 능선 너머도 일반 법령 구역으로 옮겼다.

150곳의 얼개는 이렇다. 기념물이 98개로 가장 많고 민속문화유산 45개, 유형문화유산 6개, 문화유산자료 1개가 뒤를 잇는다. 완화 대상에는 조선시대 북쪽 해안을 지켜보던 조천연대, 한라산국립공원 볼래오름 자락의 존자암지, 절부암, 그리고 대정향교가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도지정문화유산 주변 건축 규제에 손을 댄 것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으니, 열 해를 건너뛴 조정이다. 그 사이 마을은 늙고 집은 낡았다. 세계유산본부는 2025년 3월부터 역사·고고·건축·민속 분야 전문가 자문을 받고, 문화유산위원회가 현장을 밟았으며, 보고회와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쳤다. 도민 의견은 2025년 11월부터 21일 동안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김형은 세계유산본부장은 도민의 재산권을 지키는 일과 문화유산 및 그 주변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함께 저울에 올렸다는 취지로 말했다. 완화의 성격을 두고도 서술이 나뉜다. 주민 불편을 덜고 유산 보호는 오히려 촘촘해졌다는 설명이 있는가 하면, 사유재산권 행사의 제약을 풀어 지역 개발 여건을 넓혔다는 정리도 있다. 남은 50곳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확정된 내역이 공표되지 않았다.

연대의 현무암은 검고, 손을 대면 까슬하다. 향교 마당의 팽나무 잎이 바람에 쓸리는 소리는 담장 밖 마을의 소음과 섞인다. 유산을 사람의 생활에서 떼어놓아 얼려두는 방식은 그 소리를 지우는 일이기도 했다. 규제를 푼 뒤 경관이 어떻게 변할지는 몇 해가 지나야 보일 것이다.

바뀐 기준의 세부는 제주도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고, 세계유산본부 문화유산과나 제주시·서귀포시 문화예술과에 물어도 된다. 내 땅이 어느 구역에 속하는지는 유산마다 다르니 직접 확인하는 편이 빠르다. 대정향교의 담장 동쪽 20m 지점에 서 보면, 이번 조정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놓아주었는지 눈으로 가늠할 수 있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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