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 두 개가 법전에 들어갔다. 53과 61이다. 국회는 2026년 8월 26일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개정법은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53~61% 범위로 규정했다. 그동안 선언과 계획의 영역에 머물던 2030년 이후의 감축 경로가 처음으로 법률 조문이 됐다.
이 변화의 출발점은 2년 전 헌법재판소다. 헌재는 2024년 8월 기존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31년 이후 기간의 감축목표가 법에 비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오늘의 세대가 목표를 정해두지 않으면 그 몫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된다는 판단이었다.
그 빈칸이 이번에 채워졌다. 2030년 이후 기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법률에 명시되면서 법적 의무가 됐기 때문이다. 목표가 계획서에 적혀 있는 것과 법 조문에 적혀 있는 것은 구속력의 무게가 다르다. 정권이 바뀌어도, 산업 여건이 출렁여도 조문은 남는다.
개정법은 목표를 정하는 절차에도 손을 댔다. 국가 기후위기대응위원회 산하에 독립 자문기구인 기후과학위원회를 새로 설치한다. 위원장을 포함해 15~20명 규모로 구성하고, 위원 임기는 2년이다. 이 기구는 중장기 감축목표 설정과 온실가스 감축 진전 동향 등을 다룬다.
기후과학위원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감축목표는 과학이 제시하는 탄소예산과 정치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정해진다. 그 협상 테이블에 과학적 근거를 상시로 올려두는 장치가 없으면 목표는 매번 뒤로 밀린다. 다만 이 위원회의 권고가 어느 정도 구속력을 갖는지, 언제 출범하는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법이 통과된 그날, 환경단체는 박수 대신 이의를 냈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눈속임이라는 취지의 반발이 나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초기 감축형 감축 경로만 명시하는 방향으로 탄소중립법을 조속히 재개정할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 감축 목표와 경로를 담보할 규제·지원 정책을 만들고 재원을 마련하라는 요구도 함께였다.
이 비판은 목표치가 낮다는 불평과는 결이 다르다. 기후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은 도착점의 숫자가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곡선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같은 2035년 목표라도 초반에 가파르게 줄이는 경로와 후반에 몰아서 줄이는 경로는 대기 중에 쌓이는 누적 배출량이 크게 다르다. 뒤로 미룬 감축분은 결국 더 짧은 기간에 더 급격한 전환을 요구하는 청구서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이번 개정을 성과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목표가 법에 없던 상태와, 목표는 있으나 경로를 더 다듬어야 하는 상태는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헌재 결정이 요구한 최소한의 골격은 세워졌고, 이제 논쟁은 골격 위에 무엇을 얹을 것인가로 옮겨간다. 기후과학위원회가 제 역할을 한다면 그 논쟁의 기준선을 과학이 잡게 된다.
이제 확인할 것은 두 가지다. 기후과학위원회가 실제로 언제 문을 열고 어떤 권한으로 첫 검토 결과를 내놓는지, 그리고 53~61%라는 범위 안에서 정부가 어느 지점을 실행 목표로 삼는지다. 같은 법 조문에서 53%와 61%는 전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된다. 지역 기후 조례나 지자체 감축 계획에 대한 의견 수렴 공고가 뜰 때 한 줄이라도 의견을 남겨두는 일이, 이 범위의 어느 쪽으로 기울지를 정하는 압력의 일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