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밀고 있는 세운상가 세운4구역 재개발을 놓고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이 정면으로 맞서 있다. 쟁점은 용적이나 분양가가 아니라 종묘 담장 너머로 무엇이 보이게 되느냐다. 지난 12일 종묘 앞에서는 역사·종교·건축 학술단체와 시민단체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고,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별도의 간담회에서 원형의 가치를 언급했다. 논쟁은 한 부지의 높이 문제를 넘어 도시가 무엇을 기억으로 남길지를 고르는 국면으로 넘어갔다.
종묘 정전은 사람의 시선을 위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잿빛 기와가 수평으로 길게 이어지고, 화강암 월대는 발소리를 흡수하듯 둔탁하게 되받는다. 겨울에는 소나무 냄새와 마른 흙 냄새가 낮게 깔리고, 그 위로 비어 있는 하늘이 건축의 일부처럼 작동한다. 고층 건물이 이 하늘에 개입하면 훼손되는 것은 벽돌 한 장이 아닌 공간이 만들어내는 정적 그 자체다.
학계도 같은 지점을 짚었다. 건국대 세계유산학과가 도시 유산에 대한 경관적 접근법을 발표하며 고층 건물이 종묘의 시각적 완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연구는 1994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제출될 당시 경관을 지키기 위한 완충구역이 뚜렷하게 설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지목했다. 등재 심사에서 통과한 가치가 반드시 이후의 개발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서울시는 눈으로 확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종묘 정전 상월대 중간 지점에서, 세운4구역에 들어설 건물과 같은 높이로 애드벌룬을 띄워 사진을 찍고 여기에 경관 예상도를 겹친 이미지를 만들었다. 풍선 하나가 하늘에 떠 있는 장면은 그 자체로 논쟁의 축약본이다. 이 이미지는 국민의힘 서울시당을 통해 공개됐다.
12일 회견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지몽 스님)가 학술단체·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마련했다. 사노위 부위원장 시경 스님이 발언에 나섰고, 참가 단체들은 국제 기준에 맞춘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요구했다. 회견을 마친 뒤 이들은 서한문을 유네스코 쪽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경 스님은 고층 개발에 대한 부정적 국민 여론이 70%를 넘는다고 말했는데, 이 수치의 조사 경위는 공개된 바 없다.

발언대에는 법률과 학문 쪽 목소리도 올랐다. 민변 민생위원회 서성민 변호사는 세운4구역 사업이 초기 단계부터 문화재위원회와 이코모스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지적했다. 회견에서는 서울특별시 문화재 보호 조례 제19조 5항이 삭제된 뒤 이를 대신할 규정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중부고고학회장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계획된 건물 높이로 142m를 거론하며, 김포 장릉과 춘천 레고랜드를 앞선 실패로 꼽았다.
정부 쪽 언어도 이날 나왔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충정로 모두예술극장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종묘가 원형 그대로의 가치로 세계문화유산이 됐으므로 원형에 가해지는 변화는 평가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문화재 보존을 이유로 세운상가 재개발 계획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상태다. 회견 측은 서울시가 도심에 녹지축을 만든다는 명분을 앞세워 종묘 인접지의 고밀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본다.
보존과 활용은 서로를 이기려는 힘이다. 세운 일대는 오래 낡았고, 그곳에도 살아야 할 사람과 굴러야 할 돈이 있다. 이 긴장을 지우는 대신 무엇을 기준으로 재느냐를 정하는 것이 지금 남은 과제이며, 세계유산영향평가 요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시 측의 반박 논리는 회견 이후 공개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답은 결국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종묘 정전 앞 월대에 서서 지붕선 위쪽을 한 번 올려다보면, 지금 그 하늘이 어떤 상태인지 누구나 잴 수 있다. 여름의 매미 소리와 겨울의 마른 바람 사이, 그 빈 공간은 600년 가까이 아무것도 없는 채로 유지돼 왔다. 도시가 그 빈 곳에 무엇을 세울지는, 도시가 자신을 어떻게 기억하려는지에 대한 대답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