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성벽 세 겹, 한 이름으로 유네스코 앞에 서다

루츠·입력 2026. 01. 31. 오전 10:34:00
한양도성·북한산성·탕춘대성 묶은 '한양의 수도성곽' 등재 신청
계곡을 품고 능선을 타고 오르는 성벽이 도시의 경계를 그린다
계곡을 품고 능선을 타고 오르는 성벽이 도시의 경계를 그린다 / ⓒ 브레스저널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탕춘대성을 한 몸으로 묶은 '한양의 수도성곽'(Capital Fortifications of Hanyang)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서류함에 놓였다. 경기도와 국가유산청, 서울시, 고양시가 1월 27일 최종 신청서를 함께 냈다. 지난해 9월 넘긴 초안을 다시 손질해 완성한 판본이다. 여기서부터 심사 절차가 굴러가기 시작한다.

돌을 만져본 사람은 안다. 성벽의 아래쪽은 큰 돌이 거칠게 물려 있고 위로 갈수록 다듬은 면이 반듯해진다. 손바닥에 닿는 감촉이 층마다 다르고, 비 온 다음 날이면 이끼 냄새가 축축하게 올라온다. 한양을 지키려고 쌓아 올린 성곽의 내력은 6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세 성곽은 각자 맡은 몫이 달랐다. 한양도성은 행정의 중심을 둘렀고, 북한산성은 유사시 수도 외곽을 받쳤으며, 탕춘대성은 백성이 몸을 피하고 장기전을 버틸 창고를 감쌌다. 셋 모두 포곡식 성곽, 그러니까 계곡을 안으로 끌어안은 채 산지와 구릉의 능선을 따라 이어 쌓은 형식이다. 국가유산청은 이 결합이 동북아시아 축성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한반도 수도성곽 발전의 꼭대기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묶임은 실패에서 나왔다. 한양도성은 2012년 잠정목록에 오른 뒤 등재를 밀어붙였다가 2017년 자문기구 심사에서 '등재 불가' 판단을 받고 신청을 거뒀다. 북한산성 역시 2018년 문화재위원회의 잠정목록 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각자 서 있던 성벽들이 국가유산청 권고에 따라 하나의 서사로 다시 묶인 것은 그 이후다.

행정 중심·외곽 방어·피난 거점이 하나의 방어 체계로 이어진다
행정 중심·외곽 방어·피난 거점이 하나의 방어 체계로 이어진다 / ⓒ 브레스저널

가는 길이 매끈하지만은 않았다. 국내 절차의 마지막 관문인 '등재 신청 대상' 선정에서 문화유산위원회가 심의를 한 차례 보류했고, 유산구역과 완충구역의 기준·원칙을 더 다듬으라는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성벽 바깥으로 어디까지를 유산의 영역으로 그을 것인가는 등재 이후 도시가 감당할 규제의 두께와 곧장 맞물린다. 서울과 고양의 시가지가 성벽 코앞까지 올라와 있는 만큼, 이 선 긋기는 문서상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 심사 쪽 기류는 나쁘지 않다. 이코모스(ICOMOS)는 예비평가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실사단은 올해 9월 말께 성벽을 직접 밟아볼 예정으로 전해진다. 최종 판정은 2027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의 몫이다.

등재가 확정되면 '한양의 수도성곽'은 한국의 열여덟 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경기도로서는 수원화성과 조선왕릉, 남한산성 다음의 네 번째 목록이다. 박래혁 경기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관계 기관과 손발을 맞춰 등재 전 과정에 대응하고 이 유산의 값어치를 국제사회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기다림은 열여덟 달가량 남았다. 그사이에도 성벽은 계속 그 자리에서 낡아가고, 사람들은 그 위를 걷는다. 북한산성 대서문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 발밑에서 성돌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그 소리 너머로 고양과 서울의 지붕들이 겹쳐 보인다. 심사가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 소리를 직접 들어본 사람의 수만큼 이 성벽은 도시의 기억이 된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관련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