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세계유산영향평가 설명회를 열고, 행정 절차를 최소화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평가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윤정 세계유산정책과장은 서울시가 참여한다면 참여 시점부터 1년 이내에 절차가 끝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울시는 이민경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내고 국가유산청이 대화를 거부한 채 일방적 입장만 발표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튿날에는 세운4구역 공동실측에 나서라는 두 번째 입장문이 이어졌다.
발단은 지난해 11월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세운 4지구 재개발이 종묘에 미칠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검토가 끝나기 전까지 사업 승인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이내에 현황을 정리해 달라는 요구도 함께였지만 설명회가 열린 19일까지 서울시의 답은 오지 않았다. 두 기관은 그 사이 두 차례 마주 앉았고, 합의점은 나오지 않았다.
세계유산영향평가는 세계유산 둘레의 개발이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미리 따지는 제도다. 2011년 유네스코 자문기구 이코모스가 지침을 처음 내놓았고, 국내에서는 2019년 공주 제2금강교 건립이 첫 사례였다. 이후 해남 대흥사 호국대전과 공주 마곡사 금어원 건립에서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말 평가 대상 사업과 사전검토 절차, 평가서 작성을 담은 세계유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재입법예고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 제도가 개발을 막거나 규제를 늘리려는 장치가 아니라 상생 개발을 위한 전략적 조율 도구라고 설명했다. 사전검토, 이른바 스크리닝을 활용해 영향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판단되면 평가 대상에서 빼겠다고도 했다. 종묘처럼 무게가 실린 사안은 세계유산센터 등 국제기구와 협력해 객관성을 확보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절차를 줄이겠다는 약속과 절차를 지키겠다는 약속이 한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다.
서울시가 내미는 것은 숫자가 아닌 눈높이다. 지난 9일 종묘 입구에서는 세운4구역 고층 건물과 비슷한 높이로 띄운 애드벌룬이 관측됐다. 서울시는 건축물의 실제 높이를 재는 공동실측을 제안했으나 거부당했다고 밝혔고, 같은 높이의 애드벌룬을 종묘 정전에서 촬영하겠다는 요청도 불허됐다며 권한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목은 서울시 측 설명으로만 파악되며, 국가유산청의 확인은 발표 전이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 사적 범위인 반경 100m 밖에 있어 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지켜 왔고, 시행령 재개정을 중복·과잉 규제라 불렀다. 평가 요구가 국민재산권의 임의 제한이라는 표현도 입장문에 담겼다. 주민이 참여하는 민관정 4자 협의체를 통한 협의를 거듭 요청했으나 응답이 없었다는 주장도 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계획안의 건물 최고 높이는 170m로 파악된다.
가장 선명하게 어긋나는 것은 시간이다. 국가유산청이 말하는 1년과 서울시가 그동안 근거로 삼아 온 4~5년 사이에는 재개발의 실익이 통째로 걸려 있다. 김충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계유산 주변 개발에서 영향평가는 선택이 아닌 의무이며, 지연 사례는 있어도 거부나 미수행은 전쟁·재난 같은 예외를 빼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김지홍 한양대 교수는 의장국인 한국이 권고 이행을 미루면 국제사회의 신뢰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유산청은 서울시가 끝내 응하지 않으면 시행령 재개정안 공포 뒤 국내법 절차로 압박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윤정 과장이 권고 불이행을 두고 국가적 불명예라 표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는 7월 부산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는 점이 양쪽 계산에 모두 들어가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종묘 앞 고층 개발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서울시는 그 원칙에 동의한다고 했다.
결국 다투는 것은 건물의 높이가 아닌 종묘 정전 앞에 서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의 범위다. 나무 기둥과 기와가 만드는 낮고 긴 선, 그 위로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잿빛 겨울 하늘은 도면으로 옮겨지지 않는 종류의 값이다. 서울시는 애드벌룬 실측에 대한 공식 입장을 이번 주 안으로 달라고 요구했고, 그 요구의 시한은 지금 지나가는 중이다. 종묘는 화요일을 뺀 매일 열려 있으니, 답이 나오기 전에 한 번 정전 마당에 서서 직접 하늘을 올려다보는 편이 어떤 자료보다 정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