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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헤드폰, 소리 다섯 세기

배진경·公開 2026-09-25 12:00 KST
아무 노래도 틀지 않은 오후에 귀가 하는 일
노래를 끄고 남은 소리들
노래를 끄고 남은 소리들 / 사진 Ivan S · Pexels

흰 헤드폰 한 쌍이 어두운 머리칼 위에 얹혔다. 오른손은 이마를 넘어 제 정수리를 가볍게 짚었고, 굵게 짠 아이보리 니트 소매가 팔꿈치까지 밀려 내려갔다. 왼쪽 유리장 안에는 병과 항아리가 뿌옇게 서 있다. 흐린 오후의 빛이 오른쪽 벽을 회색으로 눌러 둔다.

사진을 보는 동안 어깨가 한 뼘쯤 내려간다. 소파 등받이에 뒤통수를 맡긴 사람의 턱은 풀려 있고, 눈꺼풀은 조용히 닫혔다. 그 닫힌 눈을 따라 이쪽 숨도 한 박자 길어지고,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 있다는 감각이 뒤늦게 돌아온다.

종일 눈이 앞장서는 날에는 마음이 몸보다 서너 걸음 나가 있곤 한다. 그런 날 귀는 아침부터 켜져 있었는데도 들은 것이 하나도 없다.

눈꺼풀을 내리고 지금 들리는 소리를 다섯까지 세는 데는 삼 분도 들지 않는다. 하나는 대개 아주 가까운 소리다. 냉장고가 웅웅대거나, 니트 소매가 팔에 스치거나.

둘에서 셋으로 갈수록 소리는 멀어지고, 중간에 제 숨소리가 끼어들면 그것도 하나로 세어 넣는다. 다섯 번째 소리에 닿으면 눈을 떠도 좋다.

설거지 끝에 수도를 잠그고 나서 같은 다섯을 세어 볼 수도 있다. 물이 배수구로 빠져나가고, 젖은 그릇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뒤따른다. 그동안 턱에 들어간 힘이 어디쯤에서 풀리는지, 혹은 끝까지 풀리지 않는지 지켜보기만 한다.

흰 헤드폰은 아무 노래도 틀지 않은 채 머리 위에 걸려 있고, 오후의 빛은 천천히 유리장 쪽으로 기운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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