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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기 전, 맨 아랫단에 앉기

배진경·Veröffentlicht 2026-09-22 07:00 KST
정오의 돌층계에서 어깨가 올라가기 시작할 때, 삼십 초
오르는 곳보다 앉는 곳이 더 닳았다
오르는 곳보다 앉는 곳이 더 닳았다 / 사진 Erik Karits · Pexels

정오에 가까운 빛이 돌층계를 위에서 내리누른다. 그림자는 단마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남았다. 반원으로 휘어진 객석이 아래 둥근 무대에서 꼭대기 담장까지 스무 단 넘게 뻗어 오르는데, 왼쪽 돌은 검은 얼룩이 번져 어둑하고 오른쪽 돌은 씻긴 듯 희다. 담 너머로 초록 덤불과 나무 두어 그루가 고개를 내밀고, 그 위 하늘에는 구름이 한 점도 없다.

이런 층계를 만나면 눈이 꼭대기부터 훑고 내려온다. 스무 단이 채 세어지기도 전에 어깨가 조금 올라가고, 발바닥은 신발 안에서 디딜 준비를 마친다. 숨이 짧아진다.

오르지도 않았는데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 있고, 눈의 초점은 맨 윗단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른다. 몸은 늘 도착부터 한다.

가 보지 않은 길을 마음이 끝까지 밟아 버리는 버릇은, 저 돌층계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오르기 전에 맨 아랫단에 그냥 걸터앉아도 늦지 않는다. 돌의 서늘함이 얇은 옷을 통과해 올라오는 동안 손바닥을 옆 단에 펴 놓고, 둥근 무대 바닥이 눈높이 아래로 내려앉는 것을 본다. 삼십 초면 충분하다. 위쪽 단들은 그동안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퇴근길 지하철 출구에서도 같은 일이 된다. 첫 단을 밟기 직전 두 박자쯤 멈춰 서서, 턱에 들어간 힘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들여다본다. 풀리는지 그대로인지는 날마다 다르고, 그 차이를 아는 것만으로 하루가 조금 달라지는 날도 있다.

맨 아랫단 모서리가 왜 가장 반들하게 닳았는지, 돌은 말해 주지 않는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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