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물 한 점의 상태를 적는 일에는 눈과 손과 시간이 든다. 곰팡이의 기미, 안료가 들뜬 결, 금속에 번진 푸른 얼룩을 하나씩 짚어야 한다. 그 일을 아흔세 번 되풀이할 사람이 한 명뿐이라면, 그 유산이 보존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계기로 등재를 알리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커지고 있다. 같은 시기 현장에서는 학예사 한 사람이 93점을 떠맡는 살림이 드러났다. 두 장면 모두 올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등재는 결승선이 아니고 출발이며, 돌봄에 사람을 붙이지 못한 등재는 유산을 살아 있는 것에서 기념물로 바꿔놓는다. 명패는 하루 만에 걸리지만, 습도와 해충과 균열은 하루도 쉬지 않는다.
축제는 순간을 위해 설계된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로 정해져 있고, 초청작 전체 라인업은 9월 1일 공개될 예정이다. 시작과 끝이 못박혀 있다. 유산은 그렇게 설계된 적이 없다.

반론은 만만치 않다. 등재만큼 예산과 관심을 한꺼번에 끌어오는 지렛대가 없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 실제로 등재는 정비 사업을 부르고, 지자체를 움직이고, 사람들의 발길을 돌려세운다. 그러나 그 관심은 개막식과 준공식에 몰리고, 온습도 기록과 목록 대조에는 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야간 개방과 체험 프로그램, 촬영 유치는 닫힌 유산을 다시 열어놓는다. 그러나 사람이 드나들수록 먼지와 습기와 진동이 쌓이고, 그것을 매일 적어둘 손이 더 필요해진다. 활용의 총량을 늘리려면 돌봄의 총량을 같은 만큼 늘려야 하는데, 지금은 한쪽만 부풀고 있다.
등재 심사에서 국제기구가 거듭 확인하는 항목도 결국 보존관리 계획과 그 계획을 실행할 사람이다. 등재 이후의 인력 배치는 국제 무대의 요구인 동시에 유물 곁의 요구다. 두 요구는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등재 심사가 요구하는 보존관리 계획은 온습도 기록과 유물 상태 점검을 수행할 인력을 전제로 한다. 앞으로 발표될 등재 관련 예산안에 인력 항목이 몇 줄 붙는지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