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봄이 조용해지는 것을 우리는 듣지 못했다

편집부·입력 2026. 09. 02. 오전 7:00:00
레이철 카슨, 바다에서 살충제 규제까지
레이철 카슨(1907~1964)
레이철 카슨(1907~1964) / 일러스트 ⓒ 브레스저널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전공을 생물학으로 바꾼다. 1929년 졸업할 때 그는 그 학교에서 과학 학위를 받은 드문 여학생이었다. 30여 년이 지나 그가 쓴 한 권의 책이 미국의 농약 정책을 뒤집는다.

레이철 루이즈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1964)은 펜실베이니아주 스프링데일에서 태어난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다. 펜실베이니아 여자대학에서 전공을 문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꿔 1929년 졸업했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해양생물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37년부터 1952년까지 어류·야생동물국에서 해양생물학자로 일했다.

《우리 주변의 바다》(1951)로 내셔널 북 어워드를 받은 뒤 집필에 전념했고, 1962년 《침묵의 봄》을 냈다. 56세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Q1. 전공을 문학에서 생물학으로 바꾸셨습니다. 글을 쓰겠다던 사람이 실험실로 갔는데,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저는 두 길을 갈아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한 책들은 결국 바다와 자연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생물학은 제가 쓰고 싶던 대상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도구였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메릴랜드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신문에 자연사 기사를 썼습니다. 실험실의 언어와 지면의 언어를 동시에 쓰는 훈련이었습니다. 시적인 문장과 정확한 사실이 서로를 깎아먹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배웠습니다.

1937년부터 어류·야생동물국에서 해양생물학자로 일했습니다. 열다섯 해가 지나 저는 그 일을 그만뒀습니다. 글 쓰는 일에 전부를 걸기 위해서였습니다.

Q2. 바다에 관한 책을 쓰던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충제로 눈을 돌렸습니까?

바다 삼부작을 마치고 나서였습니다. 《해풍 아래서》(1941), 《우리 주변의 바다》(1951), 《바다의 가장자리》(1955)를 쓰는 동안 저는 물가에서 깊은 바다까지 생명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육지에 뿌린 것이 물로 가지 않을 리 없습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저는 합성 살충제가 만든 문제들을 들여다봤습니다. 4년 동안 직접 조사한 내용을 2장부터 17장까지에 담았습니다. DDT를 비롯한 약제가 새와 물고기, 야생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를 순서대로 적었습니다.

책의 1장은 우화로 시작합니다. 조화롭던 마을이 서서히 생명을 잃고, 봄이 와도 새 울음이 들리지 않는 곳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과학 보고서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사람이 자기가 사는 곳을 잃는 장면을 그려봐야 다음 장을 읽기 때문입니다.

Q3. 1962년 출간 직후 화학업계와 농약 제조업체의 공격이 극심했습니다. 그들의 반박 가운데 일부는 타당했습니까?

저는 살충제를 전부 없애자고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논쟁은 곧 전면 금지냐를 놓고 갈렸고, 저를 감정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쪽이 훨씬 편했을 겁니다. 비난과 모략은 출간 직후 극에 달했습니다.

그렇다고 제 글에 약한 곳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권으로 여러 화학물질을 다루면서 물질별로 위험의 크기가 다르다는 점을 충분히 세분하지 못했습니다. 농업 현장에서 해충 피해로 생계를 잃는 사람들의 사정도 더 두껍게 썼어야 했습니다.

저를 공격한 사람들을 악인으로 그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오염을 진보의 대가로 파는 일이 오랫동안 아무 저항 없이 통했던 세상에서 일했습니다. 제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그 통용 방식이었습니다.

Q4. 책이 공격받던 시기에 병중이셨습니다. 그 시기를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몸이 무너지는 것과 책이 공격받는 것이 같은 시기에 왔습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환경 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꾸렸고, 저는 대통령 과학자문기구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그 결과를 오래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회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편지였습니다. 제 대리인 마리 로델이 나중에 제 원고와 편지를 정리하는 데 2년 가까이 썼고, 보낸 사람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했습니다. 동의한 것만 서고에 남았습니다.

1964년 세상을 떠났지만 일은 이어졌습니다. 1965년 로델은 제가 책으로 묶으려던 글들의 출판을 계획했습니다. 아이에게 땅과 바다와 하늘 아래 자신을 놓아보게 하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Q5. 바다 삼부작을 쓰던 시기에 핵폐기물의 해양 투기를 경고하셨습니다. 바다를 그렇게 다룰 수 있다고 믿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다가 크다는 감각입니다. 넓으니 무엇을 넣어도 희석된다는 생각이 오래 통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삼부작을 쓰면서 해안의 웅덩이 하나와 심해가 같은 물의 다른 부분이라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습니다. 희석은 사라짐이 아닙니다.

살충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밭에 뿌린 것은 밭에 머물지 않습니다. 흙을 지나 물로 가고, 작은 생물에서 큰 생물로 옮겨 가며 몸속에 쌓입니다. 지구 규모의 문제는 대개 이렇게 경계가 없다는 데서 옵니다.

Q6. 2026년 지금도 여러 나라가 기후·화학물질 규제를 놓고 같은 논쟁을 반복합니다. 1970년 환경보호청 설립을 이끌어낸 경험에서 오늘에 건넬 것이 있습니까?

제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문제는 권한의 겹침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농무부 한 곳이 농업 진흥과 농약 규제를 함께 맡고 있었습니다. 같은 부처가 촉진과 제어를 동시에 하면 어느 한쪽은 반드시 밀립니다. 저는 그것을 이해충돌이라고 봤습니다.

1970년 환경보호청이 따로 세워진 것은 그 겹침을 떼어낸 일입니다. 그에 앞서 1967년 환경보호기금이 만들어져 오염되지 않은 환경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법정에서 다퉜고, 1972년까지 미국에서 DDT의 단계적 사용 금지를 얻어냈습니다. 소송과 입법과 편지가 겹쳐서 만든 결과입니다.

1980년대에 그 정책들이 되돌려지는 것도 봤습니다. 얻은 제도는 계속 지키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습니다. 되돌려질 수 있다는 것은 다시 세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Q7. 100년 뒤 이 지면을 읽을 사람에게 한 가지만 남긴다면 무엇입니까?

거창한 결심은 필요 없습니다. 오늘 사는 곳 가까운 물가에 나가 무엇이 살고 있는지 십 분만 들여다보십시오. 이름을 몰라도 됩니다. 무엇이 있었는지 알아야 무엇이 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쓴 책들은 모두 그 십 분에서 나왔습니다. 봄이 조용해지는 것을 듣는 귀는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레이철 카슨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편집부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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