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살 소년이 아버지를 따라 새벽 숲으로 들어간다. 나무껍질에 비스듬한 홈을 내고, 흘러내린 흰 수액이 그릇에 고이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자란 사람이 글을 읽게 된 것은 열여덟 살, 손에 쥔 청구서의 뜻을 알고 싶어서였다.
브라질 아크리주 샤푸리 외곽 봉 푸투루 고무 채취지에서 프란시스쿠 아우비스 멩지스 필루, 시쿠 멩지스가 태어났다. 1944년 12월 15일생. 고무병사로 징집돼 아크리에 정착한 아버지를 둔 집의 17남매 중 하나였고, 어린 시절을 넘긴 형제는 여섯뿐이었다.
2대째 고무채취꾼이었고, 문해 교사였고, 농촌노동자조합과 샤푸리 고무채취자조합을 만든 조직가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급진적 노조 지도자이자 환경운동가로 불리며 주의원과 시의원 선거에도 나섰다. 1985년 브라질리아에서 전국 고무채취자평의회 첫 모임을 열었고, 그해 11월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이 그 모임을 촬영했다.
1988년 12월 22일, 마흔네 번째 생일에서 일주일 뒤 축산농장주가 보낸 총에 목숨을 잃었다. 브라질 환경부 산하 생물다양성 보전기관이 그의 이름을 달고 있다.
Q1. 열여덟 살에 에우클리지스 페르난두 타보라에게 글을 배우셨습니다. 신문 조각으로 읽기를 익혔다는데, 그 종이가 무엇을 바꿔 놓았습니까?
글자를 모르면 셈을 못 합니다. 셈을 못 하면 내가 받아낸 고무의 값이 얼마인지, 빚이 왜 줄지 않는지 따질 수 없습니다. 농장주들이 고무 채취지 근처에 학교를 두지 않으려 한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타보라는 낱말과 함께 브라질이라는 나라의 사정을 건네주었습니다. 사회와 정치를 다룬 신문 기사를 더듬거리며 읽는 동안, 세링게이루가 겪는 일이 이 나라 곳곳의 일과 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배운 것을 곧바로 이웃에게 가르쳤습니다.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늘자 조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Q2. 1975년 브라질레이아에서 고무채취자조합이 만들어지고 윌슨 피네이루가 위원장, 선생이 서기를 맡았습니다. 그 무렵 쓰신 '엥파치(empate)'는 실제로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벌목꾼과 불이 들어오는 길목에 사람이 섭니다. 무기 없이 줄지어 서서 길을 막습니다. 나무를 베러 온 이들도 대개 일당을 받고 온 가난한 사람들이어서, 숲이 사라지면 그 일당도 사라진다고 설득했습니다.
숲을 망가뜨리지 않고 쓰는 사람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구역을 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했습니다.
1985년 브라질리아 모임에는 전국의 채취자들이 모였습니다. 도로 포장과 목축, 산림 파괴가 한 덩어리라는 것이 그 논의에서 분명해졌고, '추출보호구역'이라는 말도 거기서 나왔습니다.
Q3. 고무 채취만으로는 지속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선생의 운동에서 무엇이 모자랐습니까?
고무값이 떨어지는 걸 우리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나라 전체에서 고무산업이 기울었고, 땅은 팔려 나가 목초지로 불태워졌습니다. 그런 형편에서 고무 하나에 생계를 걸어 두면 결국 사람들이 숲을 떠납니다.
그래서 견과와 과일, 기름과 섬유까지 여러 산물을 함께 쓰는 협동 체계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는 마을을 세우지 못하면 그 체계도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합니다. 저는 그 일을 시작만 해 놓았습니다.
비판도 받았습니다. 우리 조합이 환경운동과 손잡자 그건 부르주아의 관심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숲을 잃으면 노동자도 없다고 답했습니다.
Q4. 협박을 받으면서도 길목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숲을 막아서는 데 왜 그런 대가가 따랐습니까?
땅이 팔리고 불태워져 목초지가 되는 동안, 우리는 그 길목에 서서 몇 번은 그것을 멈춰 세웠습니다. 멈춰 세운 쪽에는 잃을 것이 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협박은 오래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면서 살았고, 저도 그랬습니다.
1988년 12월 22일, 생일에서 일주일 뒤 저는 축산농장주가 보낸 총에 죽었습니다. 저를 기억하실 거라면 죽음보다 그전 십수 년, 길목에 함께 섰던 사람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Q5. 숲과 인권을 한 문제로 보셨습니다. 그 둘이 어떻게 만납니까?
처음에 저는 고무나무를 지키는 줄 알았습니다. 다음에는 아마존을 지키는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야 인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숲에 사는 사람을 내보내고 숲만 남기려는 계획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 땅에서 나오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있어야 누가 불을 놓는지, 어디서 나무가 사라지는지 매일 지켜보는 눈이 생깁니다.
원주민과 채취자, 농민을 한편에 세우자고 한 것은 도의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숲이 살아남는 실용의 문제였습니다.
Q6. 2026년 지금, 아마존 보전은 기후 대응의 핵심으로 이야기됩니다. 국제 자금과 기업의 약속이 늘었는데 선생이라면 무엇을 확인하시겠습니까?
1985년 모임 뒤 바깥의 환경운동이 우리를 주목했고, 그때부터 우리 사정을 훨씬 넓은 곳에 말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가 숲의 운명을 정합니다. 도로를 포장하는 데 돈이 들어가면 목축이 따라 들어옵니다.
그러니 저는 발표문보다 계약서를 보겠습니다. 그 구역에 실제로 사는 사람들의 이름이 문서에 있는지, 그들이 산물을 팔아 생계를 잇도록 설계됐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숲을 지키겠다는 말과 숲에 사는 사람의 권리를 인정하는 일이 갈라지면, 그 약속은 종이에서 멈춥니다.
Q7.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습니까?
거창한 것은 없습니다. 숲에서 나온 견과 한 봉지, 고무 한 장이 어디서 왔고 누구 손을 거쳤는지 물어봐 주십시오. 그 한 번의 물음이 우리가 길목에 서서 하려던 일과 같습니다.
새벽마다 나무에 홈을 내고 수액이 고이기를 기다립니다. 나무는 베이지 않았고 저는 다음 날 다시 옵니다. 제가 바란 것은 그 반복이 계속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시쿠 멩지스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