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코틀랜드 던바의 바닷가에, 세 살배기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던 길이 있다. 그 아이는 이스트로디언의 해안과 들판을 쏘다니며 자랐고, 성경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긴 아버지 밑에서 자주 매를 맞았다. 훗날 그는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린다.
존 뮤어(John Muir)는 1838년 4월 21일 던바의 3층 석조 주택에서 여덟 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열한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고, 자연학자이자 저술가, 식물학자, 빙하학자로 시에라네바다를 걸으며 쓴 글은 수백만 명에게 읽혔다. 요세미티 계곡과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보전에 힘을 보탰고 시에라클럽을 공동 창립했다. 1914년 12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Q1. 가장 오래된 기억이 세 살 때 할아버지와 걷던 산책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연을 향한 마음은 그때 생겼습니까?
기억의 밑바닥에 그 짧은 산책이 깔려 있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이스트로디언의 해안과 들판을 온종일 쏘다녔습니다. 새 둥지를 몇 개나 아는지 겨루고,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전투를 흉내 내며 운동장에서 뒹구는 아이였습니다.
그 시절 자연사에 흥미가 붙었고, 알렉산더 윌슨의 책을 읽으며 새를 보는 눈을 얻었습니다. 열한 살에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갔지만 억양은 평생 그대로 남았습니다. 던바에서 자란 아이가 미국의 숲에서 늙었을 뿐입니다.
Q2. 요세미티를 국립공원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잡지에 두 편의 글을 실으셨습니다. 왜 산을 떠나 지면을 택하셨습니까?
산에서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워싱턴까지 들리지 않습니다. 저는 '요세미티의 보물'과 제안된 국립공원의 지형을 설명한 글, 두 편을 세기지(The Century Magazine)에 실었습니다. 계곡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그 글을 읽고 계곡을 지켜야 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1890년에 의회가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세우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글을 읽은 대통령과 의원들이 움직였고, 저는 그것을 제 산문의 힘보다 계곡 자체의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켜야 할 것에는 이름과 경계선이 있어야 합니다. 이름이 붙지 않은 땅은 언제든 다른 용도로 계산됩니다.
Q3. 선생은 완전 보전주의자로 불렸습니다. 사람의 이용을 전면 차단하자는 주장은 당대에도 극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는 식물과 동물, 그 안의 모든 것을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나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그 말이 전부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제 주장은 생계를 끊는 소리로 들렸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를 그렇게까지 밀어붙인 것은 협상의 경험이었습니다. 조금만 열어주자는 합의는 조금에서 멈추는 법이 없었습니다. 절반을 내주면 다음 세대가 다시 절반을 내주게 됩니다.
제 사고방식은 국립공원 관리 원칙으로 남아, 주요 공원 대부분에서 사냥이 금지되었습니다. 멸종 위기에 놓인 종이 자기가 살던 생태계 안에 그대로 머물 수 있게 된 겁니다. 제가 지나쳤던 만큼 지켜진 것도 있었다고 봅니다.
Q4. 아버지는 성경 공부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하찮게 여겼고 매를 자주 드셨습니다. 그 엄격함에서 어떻게 빠져나오셨습니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였으니 맞을 일도 많았습니다. 던바의 해안과 들판을 쏘다닌 것은 그 집에서 잠시 벗어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면 아무도 저를 나무라지 않는 세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앙을 버렸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교리는 제가 밀어낸 것이 없이도 저절로 떨어져 나갔고, 잃었다는 느낌은 남지 않았습니다. 대신 저는 산에서 예배드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토머스 칼라일의 산문과 로버트 번스의 시가 그 빈 곳을 채웠습니다. 미국 오지를 걸을 때도 번스의 시집 한 권은 늘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Q5. 선생의 글에서 자연은 자원보다 신앙에 가깝게 읽힙니다?
제 전기를 쓴 이는 제 소임이 미국인의 영혼을 물질주의에 완전히 넘겨주지 않는 데 있었다고 정리했습니다. 저는 그 표현이 과하지 않다고 봅니다. 계곡을 목재와 초지의 값으로만 계산하기 시작하면, 계산이 끝나는 날 계곡도 끝납니다.
사람이 땅과 하나라는 감각은 감상이 아닌 관찰의 결과입니다. 빙하가 화강암을 깎는 시간을 들여다보면 사람의 일생이 어디쯤 놓이는지 알게 됩니다. 그 감각을 잃은 사회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Q6. 2025년 지금은 기후와 생물다양성이 함께 무너지는 시대입니다. 경계선을 긋는 방식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 시대의 위협은 톱과 소 떼처럼 눈에 보였고, 담장을 치면 막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위협은 담장을 넘어 들어옵니다. 공원 경계 안에 있어도 기온이 오르면 그 안의 나무는 죽습니다.
그렇다고 경계선이 쓸모없어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보호된 땅은 종이 물러설 마지막 자락이고, 그 자락이 없으면 회복을 말할 근거도 사라집니다. 경계 안을 지키는 일과 경계 밖의 배출을 줄이는 일은 하나의 작업입니다.
저는 다 끝났다는 말과, 조금 고쳤으니 되었다는 말을 똑같이 경계하라고 하겠습니다. 둘 다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듭니다.
Q7.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한 가지만 남기신다면?
이번 주말에 가까운 산이나 하천으로 걸어 나가 보십시오. 이름을 아는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를 만들어 오면 됩니다. 이름을 아는 것은 지키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1893년 던바로 돌아가 옛 동무를 만났을 때, 기억 속 해안은 그대로였습니다. 누군가 그 해안을 지켜두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름을 붙이는 나무 한 그루가, 백 년 뒤 누군가의 기억을 그대로 남겨 둘 겁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존 뮤어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