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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진료 대기 한 달, 통합돌봄은 언제 도착하나

배진경·입력 2026. 07. 01. 오전 10:49:00
새 지자체장 임기 첫 달, 통합돌봄 공약을 다시 읽는 법
제도가 시작된 날과 돌봄이 도착하는 날은 같지 않다
제도가 시작된 날과 돌봄이 도착하는 날은 같지 않다 / ⓒ 브레스저널

거동이 어려운 어머니를 대신해 주민센터에 전화를 건 딸이 있다. 의사가 집으로 오는 방문진료를 신청했고, 안내받은 대기 기간은 한 달이었다. 제도가 있다는 말과 돌봄이 도착했다는 말 사이에 서른 날이 놓여 있다.

통합돌봄은 제도로는 출발했다. 병원과 시설을 떠나 살던 집에서 늙어갈 수 있게 의료·요양·생활지원을 한 창구로 묶겠다는 약속이었고, 그 설계는 문서상 완결에 가깝다. 문제는 창구가 열린 뒤부터다. 신청서를 낸 사람이 실제로 의사를 만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설계도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돌봄을 받는 쪽도, 하는 쪽도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통합돌봄의 언어에는 성인지 관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홀로 사는 여성 노인이 낯선 사람을 집 안에 들이는 일의 부담, 며느리와 딸에게 조용히 넘겨지는 간병의 짐 같은 것들이 계획서에서 사라진다. 사람을 성별 없는 평균으로 놓으면 정책은 정확해 보이지만 현관문을 넘는 순간 어긋난다.

새 지자체장들의 통합돌봄 공약은 얼마 만에 닿겠다는 약속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센터를 몇 개 짓겠다는 문장보다, 신청에서 첫 방문까지 며칠로 줄이겠다는 문장이 시민의 삶을 더 정확히 바꾼다. 임기가 시작된 지금이 그 문장을 요구할 시점이다.

도착 시간은 지자체가 마음먹는다고 줄어들지 않는다. 방문진료에 나설 의사가 부족하고, 수가와 인력 기준은 중앙정부가 쥐고 있으며, 농촌에서는 이동 거리 자체가 대기 기간이 된다. 기초단체장에게 서른 날을 열흘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을 책임지라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대기 기간을 공개하고 측정하는 순간, 그 병목이 인력 때문인지 예산 때문인지 조정 실패 때문인지가 드러난다. 권한이 중앙에 있다면 그 근거를 들고 중앙에 요구하는 것도 지자체장의 일이다. 측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 서른 날은 조용히 굳어진다.

돌봄을 받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계속 살겠다고 결정한 시민이다. 시혜의 대상으로 다룰 일이 아니다. 그 결정을 지탱하는 것이 행정의 몫이고, 결정이 지켜졌는지는 하루 단위로 확인된다.

지금 바뀌고 있는 것도 있다. 여러 지자체가 돌봄 창구를 하나로 합치면서, 흩어져 있던 신청 기록이 한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그 기록은 누가 얼마나 기다렸는지를 처음으로 셀 수 있게 해준다. 임기 첫해의 성적표를 준공식 사진 대신 그 대기 일수로 받아보겠다고 말하는 단체장이 나온다면, 통합돌봄은 그때부터 실제로 작동한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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