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전나무 사이 흙길을 걷다

배진경·입력 2026. 09. 04. 오후 12:00:00
잔자갈 소리에 걸음이 짧아지는 이른 아침의 십 분
끝이 보이지 않으면 걸음이 느려진다
끝이 보이지 않으면 걸음이 느려진다 / 사진 Helge Juul Falberg · Pexels

흙길 하나가 사진 밑변에서 출발해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가운데로 마른 풀이 가늘게 돋아 바큇자국 둘을 갈라놓았고, 노면에는 잔자갈과 솔가지 부스러기가 흩어졌다. 양옆은 전나무 벽이다.

왼쪽 가지들은 짙은 초록으로 낮게 내려앉아 길가 마른 억새를 덮었고, 오른쪽 나무는 잔가지 끝을 길 위로 슬쩍 내밀었다. 그 너머로 흐릿한 줄기 서넛이 안개에 반쯤 지워진 채 서 있다. 저 끝에서 흰빛이 나무 사이를 데우는 걸 보면 해가 막 올라온 이른 아침이다.

이런 길에 서면 발바닥부터 달라진다. 잔자갈이 신발 밑에서 조금씩 구르고, 밤새 젖은 흙은 뒤꿈치를 반 박자쯤 붙잡는다. 붙잡히는 만큼 걸음이 짧아지고, 짧아진 걸음을 따라 어깨가 저 혼자 내려간다.

눈은 초점을 저 멀리 흰빛에 걸어둔 채 풀어지고, 주머니에서 나온 손은 팔꿈치 옆에서 가볍게 흔들린다. 숨이 코끝에서 서늘하게 꺾인다.

길 끝을 안개가 지워버린 덕분에,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따지던 마음이 잠시 할 일을 잃는다.

삼 분이면 되는 일이 하나 있다. 건물 밖으로 나가 가로수 그늘이 시작되는 데부터 스무 걸음을 걸어본다. 그늘이 끝나면 돌아서서 스무 걸음을 되짚는다.

그동안 발이 땅에 닿는 소리를 하나씩 세어봄직하다. 나무는 한 그루로 충분하고, 그 한 그루가 드리운 그늘의 폭이 오늘 걸을 숲길의 전부가 된다.

같은 걸음은 밤으로도 옮겨진다. 불을 끄고 누워 눈꺼풀 안쪽으로 그 흙길을 스무 걸음쯤 밟는 동안, 턱을 한 번 살펴본다. 어금니가 붙어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만 확인하고 그대로 지나간다. 붙어 있었다고 해서 고칠 필요는 없고, 떨어져 있었다고 해서 무언가 좋아졌다고 볼 일도 없다.

안개는 걷히려고 서두르는 법이 없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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