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늙은 나무 둘레를 한 바퀴

배진경·입력 2026. 07. 31. 오후 8:59:00
사방으로 뻗은 가지 아래, 발바닥으로 걷는 삼 분
둘레를 도는 동안 숨이 길어진다
둘레를 도는 동안 숨이 길어진다 / 사진 Lucas George Wendt · Pexels

굵은 줄기 하나가 화면 가운데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더니, 가지들이 좌우로 낮게 뻗어 사진 밖까지 나갔다. 껍질에는 이끼가 얼룩덜룩 붙었고 그 위로 초록 덤불 같은 것이 얹혀 자란다. 한낮이다.

잎 사이로 빠진 빛이 바닥에 얼룩을 만들고, 나무 오른쪽 잔디는 눈이 부실 만큼 밝다. 뿌리 언저리 흙은 볕이 닿지 않아 갈색으로 가라앉았다.

이런 나무 밑에 서면 목이 먼저 젖혀진다. 위를 올려다보느라 턱이 들리고, 어깨는 저도 모르게 뒤로 열린다. 발바닥에 닿는 흙은 잔디보다 단단하고 조금 서늘하다.

서두르던 마음이 여기서 한 박자 어긋난다. 이 나무는 백 년을 들여 저 가지 하나를 옆으로 밀어냈을 텐데, 그 밑에 선 사람은 오 분 뒤 약속을 세고 있다.

줄기를 중심에 두고 한 바퀴 돌아보아도 좋겠다. 손끝이 껍질에 스칠 만큼 가까이, 뿌리에 걸리지 않게 발을 옮기며. 반 바퀴쯤에서 아까 보이던 밝은 잔디가 등 뒤로 넘어가고 시야가 어두워진다.

그늘의 결이 바뀌는 그 지점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한 바퀴는 끝난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같은 걸음을 저녁 설거지 앞에서도 옮겨볼 수 있다. 개수대를 한 바퀴 도는 대신 그릇 하나를 씻는 동안 몸무게를 왼발에서 오른발로 천천히 넘기면서, 그때 턱에 들어간 힘을 살펴본다. 물소리가 커질수록 이가 맞물리는지, 아니면 입이 조금 벌어지는지.

가지 끝은 아직도 어딘가로 자라는 중이고, 그 아래 그늘은 오늘 오후에도 조금씩 옮겨 앉는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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