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파란 전정가위가 잎 끝에 닿을 때

배진경·입력 2026. 06. 19. 오전 10:50:00
관목 한 줄기를 고르는 손의 느린 움직임
손이 느려지면 하루도 느려진다
손이 느려지면 하루도 느려진다 / 사진 Kampus Production · Pexels

파란 손잡이의 전정가위가 가느다란 줄기 하나를 물고 있다. 잎은 두껍고 윤이 나며, 초여름 볕이 잎 표면에서 하얗게 부서진다. 오른손은 가위를 쥐고, 왼손은 자를 가지를 가만히 짚어 둔다. 배경의 초록은 흐리게 풀어져 있고, 분홍 셔츠 소매만 선명하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가위를 쥔 손처럼 힘이 한곳에만 모이고 나머지는 풀린다. 눈의 초점도 잎 한 장 크기로 좁아지고, 그 사이 숨이 저 혼자 길어진다.

정원 손질은 모든 가지를 다루는 일이 아니다. 오늘 자를 하나를 고르는 일에 가깝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사람이 잃는 것도 대개 그 고르는 감각이다.

지금 곁에 화분이 있다면 잎 하나를 골라 젖은 천으로 닦아 보자. 앞면을 문지르고 뒷면을 받쳐 먼지를 밀어내는 데 삼 분이면 넉넉하다. 화분이 없다면 창턱이나 컵 하나를 같은 손놀림으로 훔쳐 보면 어떨까.

같은 손놀림은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뀐 횡단보도 앞에서도 쓰인다. 가방끈이나 소매 끝을 손가락으로 한 번 훑어 내리는 동안,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 중 어느 쪽이 더 긴지 세어 두는 정도면 된다. 초여름 볕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시간대라면 그늘진 쪽으로 반걸음 물러서서 해도 좋겠다. 길이는 재는 대상일 뿐 고쳐야 할 것이 아니니, 짧으면 짧은 대로 두고 초록불을 기다리게 된다.

닦아 놓은 잎은 저녁 빛을 조금 다르게 받는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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