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젖은 흙길이 숲 안쪽으로 곧게 뻗어 있다. 양옆의 전나무는 아래쪽 가지까지 짙은 초록을 머금었고, 길 끝은 흰 안개에 잠겨 형체가 흐려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든 빛이 안개에 번져 숲 전체가 옅은 우윳빛으로 부풀어 오른 이른 아침이다.
이런 장면을 마주하면 눈의 초점이 갈 곳을 잃는다. 멀리 두려 해도 흐린 흰빛뿐이라, 시선은 결국 발밑으로 내려온다. 그러면 어깨가 조금 내려가고, 들이쉬는 숨에 젖은 흙과 침엽수 냄새가 함께 섞여 들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을 때 마음은 조급해지곤 한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헤아리려 들면서, 정작 지금 밟고 있는 흙의 감촉은 놓친다.
창밖에 나무가 한 그루라도 보인다면, 잠깐 나가 그 아래를 십 분쯤 걸어봐도 좋다. 여의치 않으면 선 채로 열 걸음만 천천히 세어보면 어떨까. 발뒤꿈치부터 닿는 감각에 마음을 얹어두는 정도로 충분하다.
같은 셈은 신호등 앞에서도 이어진다. 초록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삼십 초 남짓, 건널목 건너편을 자꾸 살피는 대신 두 어깨가 어디쯤 놓여 있는지 슬쩍 더듬어보게 된다. 귀에 가까이 붙어 있는지, 아침 숲길에서처럼 스르르 내려와 있는지. 알아차리는 데까지만 해도 신호는 바뀐다.
안개는 길을 지우지 않는다. 조금 더 가까이 오라고 할 뿐이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