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색 배전함이 흰 벽에 붙어 있다. 문짝의 노란 삼각형, 그 안의 번개 표시가 이 통로에서 가장 선명한 색을 낸다. 케이블은 함 아래 소켓에서 빠져나와 바닥까지 늘어졌다가 초록 페인트 위에 한 번 크게 원을 그린다. 흰 차 두 대가 뒤를 대고 섰고, 지하 조명은 차체 곡면에서만 반짝인다.
주유소에서는 사람이 노즐을 쥐고 선다. 여기서는 아무도 서 있지 않다. 차는 밤새 머물고, 케이블은 몇 시간이고 벽과 차를 붙들어 둔다.
충전이 길게 이어진다는 성질 하나 때문에 주차장은 전기를 쓰는 공간에서 전기를 담아두는 설비로 성격을 바꾼다. 건물 배선이 도로의 연장으로 편입된다.
오른쪽 끝을 다시 본다. 차보다 카메라 쪽으로 더 튀어나온 것은 냉방 실외기다. 팬 날개가 정면으로 돌아앉았고, 그 위 천장 가까이에는 검정과 노랑 빗금이 그어져 있다.
열을 뱉는 기계와 열을 내며 전기를 받는 차가 같은 좁은 복도를 나눠 쓴다. 지하 주차장이 이 둘을 함께 감당하도록 설계된 적은 없었다.
케이블이 그린 원은 느슨하다. 남은 길이는 차 한 대분쯤 될까 말까. 다음 차가 들어오면 그 원은 펴질 테고, 그다음 차부터는 벽에 걸 함이 하나 더 필요해진다.
초록 페인트가 어디에서 끊기는지, 사진을 다시 보면 보인다.
편집부 · Breath.Cultu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