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2026년 5월 29일 기후위험 공시 규칙의 전면 폐기안을 발표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마련됐으나 한 차례도 시행되지 못한 규칙이다. 폐기안을 놓고 6월 3일부터 8월 3일까지 60일간 의견을 받았고, 접수된 의견 검토와 위원회 표결을 거쳐야 폐기가 확정된다.
한국은 반대편에 서 있다. 지속가능성 의무공시 시행 시기가 2028년으로 확정됐고, 대상 기업은 2027회계연도부터 사업보고서에 관련 내용을 담아 공시한다.
한국에서 2026년부터 굴러가는 의무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다. 상장기업이 대상이다. 지속가능성 정보의 법정공시는 그보다 두 해 뒤에 열린다.
두 일정을 한 덩어리로 읽으면 준비 기간을 잘못 잡는다.
1차 적용 대상은 연결자산 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다. 2029년에는 자산 5조 원 이상 기업까지 문턱이 내려간다. 금융위원회는 2026년 7월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기전자와 운송장비·부품, 금융, 화학, 금속, 유틸리티, IT서비스를 산업군으로 제시했다. 수출 비중이 크고 배출량 산정 범위가 넓은 업종이 앞줄에 놓였다.
실전 점검은 진행 중이다. 한국회계기준원은 KSSB(한국형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파일럿테스트에 참여할 업종별 대표 9개 기업을 뽑았다. 참여기업이 낸 질의서 답변은 8월 중순까지 모인다.
답변은 9월 문을 여는 공시이행지원 분과(TF)로 넘어가고,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가 그 논의에 참여한다. 점검 항목은 가치사슬 범위를 어디까지 그을지, 기후 관련 재무영향을 어떤 방식으로 산출할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어떻게 집계할지에 걸려 있다.

연내 공개되는 결과물에는 기업이 그대로 베껴 쓸 완성형 가이드나 모범답안이 포함되지 않는다. 참여기업이 부딪힌 쟁점과 유관기관 논의 내용을 공유하는 형태다.
미국에 접수된 의견서에는 폐기를 반기지 않는 자본이 섞여 있다.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과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은 공통 기준이 사라지면 기업별 공시가 제각각으로 흩어져 투자자의 정보 수집 비용이 커진다며 반대했다. 운용자산 12조 달러 규모의 뱅가드는 과도한 부담을 주는 공시는 피해야 한다면서도, 표준화되고 비교 가능한 중대 기후위험 공시에는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전면 폐기 대신 적용 범위와 비용 문제를 손보면서 재무적으로 중요한 공시의 최소 기준을 남기자는 대안을 냈다. 200여 개 대기업 최고경영자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과 미국석유협회는 폐기에 찬성했다.
규제 완화가 미국 안에서 논의되는 동안 국경 밖 비용은 반대로 움직인다. EU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은 2024년 시행 뒤 계도기간이 끝나, 2026년 EU 수출분부터 실질적인 탄소비용이 붙는다. 우선 적용 대상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수소, 전력이다.
탄소시장 쪽 일정도 잡혀 있다. 2026년 11월 튀르키예에서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가 열리고, 탄소시장 활성화가 주요 의제로 올라와 있다. 탄소시장 성장 연합(CGCM)에는 튀르키예와 가나, 룩셈부르크가 새로 합류해 영국과 케냐, 싱가포르 등 참여국이 14개국으로 늘었다.
SEC 폐기안의 최종 처리는 위원회 표결에 달려 있다. 미국 로펌 듀앤모리스는 2026년 말이나 2027년 초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는데, 이는 로펌의 전망이다. 폐기가 확정되더라도 EU CBAM 적용과 한국 법정공시 일정은 그대로 남는다.
다음 절차는 9월에 시작된다. 회계기준원이 모은 질의 답변이 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가 함께 앉는 논의로 넘어가고, 그 결론은 연말에 공개된다. 2027회계연도가 시작되기까지는 넉 달 반이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