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탄소 설비 전환 세제지원 강화, 에너지 고효율 제품 구매 지원, 에너지 다소비 산업 경쟁력 강화. 한국경제인협회가 8월 6일 공개한 '해외 에너지 위기 대응정책과 시사점'이 꼽은 3대 과제다. 보고서는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김진수 교수가 썼다. 단기 수급 대책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니 석유 의존도가 높은 산업 자체를 바꾸라는 주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비상 대응으로 수요 억제, 비축유 활용, 생산 증대, 연료 전환을 정리했다. 이 가운데 IEA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평가한 것은 석유를 덜 쓰게 만드는 수요 억제였다. 보고서는 네 축을 정책 설계에 실제로 반영해야 한다고 짚었다.
세제 요구는 구체적이다.
전기화학적 촉매 공정으로 만드는 E-나프타와 바이오나프타 생산설비로 갈아탈 때 현행 신성장·원천기술 수준의 세액공제를 적용하자는 안이다. 유럽에서는 석유화학 설비 전환도 요건만 채우면 공제 대상이 되지만, 국내 조세특례제한법은 열거된 설비만 지원하고 석유화학 원료 전환 설비는 그 목록에 없다. 그린수소나 합성연료 같은 저탄소 연료 생산설비로 바꿀 경우 유럽연합이 비용의 45~100%를 보조한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이 비율의 기준 연도는 보고서에 표기돼 있지 않다.
에너지 다소비 기업 지원을 놓고도 격차를 지적했다. 국내 제도는 2023~2027년 연평균 1% 이상 에너지 효율을 개선해야 대상이 되고, 받는 내용은 장기 저리융자 수준에 머문다. 영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격이 뛰자 석유화학과 철강, 시멘트 같은 에너지 집약 산업에 전력망 이용료를 환급해주고 신재생에너지 부담금을 면제했다. EU는 세금 인하 같은 급한 조치와 별도로 배터리와 태양광 등 청정산업 투자 지원을 늘려왔다.
가계 쪽 사례로는 대만이 인용됐다. 고효율 가전을 사면 1대당 3000대만달러, 우리 돈 약 14만원을 얹어주는 사업을 2029년까지 끌고 간다. 한국의 '으뜸효율 가전제품 환급'은 예산이 바닥나면 그해 안에도 문을 닫는 한시 사업이다. 대만중유공사가 국제유가 상승분의 60~75%를 떠안아 국내 가격을 누르고, 시내버스를 전부 전기버스로 바꿔 민간 석유 수요를 줄이는 방식도 함께 소개됐다.
공급이 크게 막히는 상황을 가정한 대응 순서도 나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같은 사태 초기에는 대중교통 이용 확대와 주행 제한처럼 자발적 관리로 대응하고, 사태가 길어지면 차량 5부제와 주유량 제한 같은 강제 조치로 넘어가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권혁민 한경협 성장전략실장은 에너지 수급 위기가 되풀이돼 온 만큼 앞으로도 국내 경제를 흔들 수 있다고 봤다. 설비 전환 지원 같은 중장기 대응으로 석유에 기댄 산업을 조금씩 바꿔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 쪽에서는 다른 통로로 비슷한 논의가 굴러가고 있다.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가 7월 29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연 '산업부문 저탄소 전환 정책포럼'에서 산업통상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획예산처가 정책을 발표했다. 산업그린전환 촉진법 제정과 탄소차액계약제도, 자발적 탄소시장이 거론됐고, 산업부는 다배출 업종의 감축기술 실증을 돕고 감축효율이 높은 설비투자를 골라내는 보조금 경매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철강·석유화학업계는 이 포럼에서 무탄소 전력과 수소 인프라, 저탄소 제품의 초기 수요, 정책 예측 가능성을 요구했다.
보고서가 요구한 세제와 정부가 준비하는 보조금 경매는 결국 같은 설비를 겨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