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0억 유로. EU 집행위원회가 2026년 7월 17일(현지시간) 내놓은 배출권거래제(ETS) 개편안에 담긴 산업탈탄소화은행(IDB)의 규모다. 원화로는 약 160조 원선이며, 환산에 쓰인 환율 시점은 발표문에 붙어 있지 않다. 자료에 따라 이 액수를 확정 규모로 적기도 하고 상한선으로 적기도 한다.
개편의 골자는 ETS의 성격을 바꾸는 데 있다. 배출을 억누르는 규제 장치였던 제도를 산업 탈탄소 투자를 끌어당기는 정책·투자 플랫폼으로 옮겨놓겠다는 설계다. 회원국에는 배출권 경매로 걷은 수익의 절반을 산업 탈탄소 투자에 쓰도록 하는 의무가 붙었다.
EU ETS는 2005년 출발했다. 대상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도입 당시와 견줘 대략 절반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 성과를 안고도 집행위가 틀을 다시 짠 배경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치솟은 에너지 가격,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쏟아붓는 산업 지원 정책이 거론된다. 감축 성적표만으로는 역내 제조업을 붙잡아둘 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수출 제조업이 우선 확인해야 할 내용은 무상배출권 일정이다. CBAM이 적용되는 업종에서 무상배출권을 완전히 없애는 시점은 2034년으로 잡혀 있었는데, 이번 개편안은 그 시한을 네 해 뒤인 2038년으로 미뤘다. 무상할당을 계속 받으려면 대가가 따른다. 기업이 탈탄소 투자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겨야 배정이 유지되는 조건부 방식이 원칙으로 적용된다.
2040년 감축 목표는 90%로 제시돼 있다. 기준연도는 발표문에 적혀 있지 않다. 목표치와 별개로 개편안은 2040년을 넘긴 시점에도 일정 수준의 배출을 허용하고, 무상배출권을 주는 기간 자체를 늘리는 내용을 함께 담았다.
적용 범위도 넓어진다. 해운과 항공이 대상에 들어오고, 폐기물 부문까지 포함된다는 서술도 나온다. 해운에서는 기준선이 내려간다.

지금까지 5000GT 이상 대형 선박만 걸렸다면 앞으로는 400GT급 중소형 선박까지 단계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이다. 탄소제거 기술을 ETS 안에 정식으로 편입하는 방안도 들어갔다.
한국 철강·화학·비료 업계로 보면 두 힘이 동시에 걸린다. 무상배출권 기간이 늘어난 만큼 당장 물어야 할 탄소비용은 얼마간 눌린다. 반대로 조건부 무상할당은 투자계획이라는 숙제를 얹는다. EU 역내에 생산거점을 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 LG 같은 기업들은 혁신기금이나 IDB의 지원 대상이 될 여지가 있다고 거론되나, 지원 요건과 심사 절차는 확정되지 않았다.
오태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이번 개편을 놓고 견해를 밝혔다.
개편안 발표를 두고는 표현이 갈린다. 집행위가 안을 내놓은 단계로 적는 쪽이 있고, 확정된 것으로 적는 쪽도 있다. 유럽의회와 이사회를 거치는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최종 문안이 지금과 같으리라 보기는 이르다. IDB 재원을 어떻게 마련해 몇 년에 걸쳐 집행할지, 조건부 무상할당에서 투자계획을 언제까지 내야 하고 지키지 못하면 어떤 불이익이 따르는지도 후속 문서에서 채워질 부분이다.
수출기업이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방침의 윤곽뿐이다. EU는 배출 감축을 요구하는 데서 나아가 배출권 경매 수익의 절반을 산업 탈탄소 투자에 쓰도록 제도에 명시했다. 무상할당 유지와 기금 지원 자격은 역내 투자와 이행 계획에 따라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