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호랑이가 사라진 자국에서 배우는 것

김범수·입력 2026. 07. 01. 오후 4:17:00
7월 멸종위기 야생생물 선정, 남은 서식지가 마지막 답이다
발자국은 남았지만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발자국은 남았지만 주인은 돌아오지 않았다 / ⓒ 브레스저널

수컷 한 마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땅이 약 1,400㎢, 암컷은 약 400㎢. 기후에너지환경부가 1일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호랑이를 7월 '이달의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면적의 두 배가 넘는 숲을 홀로 쓰는 동물이 한반도 남쪽에서 자취를 감춘 지 100년이 지났다. 남한에서 마지막으로 기록된 호랑이는 1924년 강원 횡성에서 포획된 개체다.

고양잇과에 속하는 호랑이는 아종이 모두 9종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카스피·자바·발리 3종은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벵골·아무르·수마트라·인도차이나·말레이·남중국 6종이 남았다. 한반도에 살던 것은 아무르호랑이(Panthera tigris altaica)로, 몸길이 140~280㎝에 체중은 100~250㎏에 이른다. 북한 함경도 일대에 소수 개체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될 뿐, 남쪽에서는 흔적조차 확인되지 않는다.

사라진 경위는 분명하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사업과 호피를 얻기 위한 남획이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 시기의 총성만으로 오늘의 공백을 전부 설명하기는 어렵다. 세계적으로 호랑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서식지 파괴, 먹이가 되는 동물의 감소, 사람 활동과의 충돌이 꼽힌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땅의 문제다. 호랑이는 울창한 산림과 계곡·하천 주변 숲에 살며 멧돼지와 사슴류를 먹는다. 큰 포식자가 버티려면 먹이가 되는 초식동물이 넉넉해야 하고, 그러려면 숲이 끊기지 않고 이어져야 한다. 러시아 극동에 가장 많은 개체가 남아 있고 중국 지린성·헤이룽장성 쪽으로 서식 범위가 넓어지는 흐름이 관측되는 것도, 그곳에 그만한 규모의 숲이 남아 있어서다.

땅을 둘러싼 결정은 늘 어렵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2024년 11월 서초구 서리풀 1·2지구 일대를 훼손이 진행돼 보전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공공주택 개발 후보지에 올렸다. 이후 서리풀 2지구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는 참매·새매·맹꽁이·수달·소쩍새 등 법정보호종 7종이 지구 안팎에서 확인됐고, 문헌으로는 법정보호종 16종과 서울시 보호 야생생물 29종이 추가로 기록됐다. 서울시의회와 서초구의회는 존치 청원을 받아들였고, 인근 성당 신자 9,500여 명도 존치를 요청하고 있다.

서식지는 사라지기 전에 먼저 잘게 끊긴다
서식지는 사라지기 전에 먼저 잘게 끊긴다 / ⓒ 브레스저널

주택도 필요하고 생물도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눈길을 끄는 것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대신 한 땅에 함께 담아내는 방식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북미에서 가장 작은 여우인 산호아킨 키트여우가 산다. 몸길이 50㎝ 남짓한 이 여우는 한때 센트럴밸리 약 3만㎢에 퍼져 있었지만 지금은 옛 서식지의 10% 미만에만 남았고, 1967년 연방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캘리포니아주립대 멸종위기종복원프로그램 연구팀은 토파즈와 파노체 밸리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각각 3년가량 GPS 목걸이와 무선 송신기로 이 여우를 추적했다. 두 발전소는 모두 어류·야생동물국이 키트여우 핵심 서식지로 분류한 땅에 지어졌고, 울타리 아래를 12~15㎝ 띄우는 등의 조치가 적용됐다. 여우들은 발전단지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며 굴을 팠고, 일부는 단지 안에서 번식한 흔적을 남겼다.

호랑이를 남한 산에 되돌리는 일은 지금 논의 대상이 아니다. 대신 이 동물이 남긴 교훈은 훨씬 실용적이다. 큰 동물은 서식지가 조각나는 순간부터 조용히 사라지고, 그 결과는 100년이 지나도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을 허가 없이 포획하거나 죽이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법으로 종을 지정해도 그 종이 딛고 설 땅까지 지켜지지는 않는다.

거주 지역의 산자락과 하천변이 지금 어떤 계획 위에 놓여 있는지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개발 계획이 공람될 때 환경영향평가 내용을 한 번 열어보고, 어떤 생물이 그곳에 적혔는지 읽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국립생물자원관(nibr.go.kr)과 국립생태원(nie.re.kr) 누리집에는 우리 곁에 남은 멸종위기종 목록이 정리돼 있다.

김범수 기자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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