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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한 왕자, 굿당의 신이 되다

김범수·입력 2026. 06. 29. 오후 7:05:00
금성당 무신도 8점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굿당 벽에 걸린 신령 그림들은 오래도록 민간의 기도를 받아왔다
굿당 벽에 걸린 신령 그림들은 오래도록 민간의 기도를 받아왔다 / ⓒ 브레스저널

왕위를 되찾으려다 목숨을 잃은 왕자가 굿당의 신령이 된 그림 여덟 점이 국가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6월 23일 '서울 금성당 무신도'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삼는다고 알렸다. 무신도란 무속에서 섬기는 신령의 모습을 화폭에 옮긴 그림을 가리킨다.

금성당이 모신 신령은 나주 금성산의 산신인 금성대왕과 금성대군(1426~1457)이다. 금성대군은 세종(재위 1418~1450)의 아들로, 조카 단종(재위 1452~1455)이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좌를 내준 뒤 이를 되돌리려다 최후를 맞은 인물로 전한다. 남도의 산신과 왕실의 인물이 한 제단에서 함께 모셔진 사례는 드물다.

그림 속 신령들은 조선 사람이 빌던 대상을 보여준다. 맹인도사는 자손이 번성하고 집안의 기운이 트이도록 돕는다고 믿어졌고, 호구아씨는 천연두를 비롯한 역병을 물리치는 신령이었다. 맹인삼신마누라, 삼불사할머니, 별상, 말서낭도 여덟 점 안에 들었다.

인물의 얼굴은 둥글고, 손가락은 길고 도톰하게 뻗었다. 불화에서 익숙한 표현법이다. 그래서 이 그림들이 불교 회화와 이어져 있으리라는 견해가 나오고, 불화를 그리던 승려 화승이 붓을 잡았을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솜씨의 밀도도 남다르다. 여느 무신도와 견주면 옷주름의 입체감이나 문양의 세부가 한결 촘촘하다. 국가유산청은 19세기 무신도로 현재 확인되는 사례가 극히 적다는 점, 그리고 다른 무신도에서 볼 수 없는 독창성과 완성도를 지정 사유로 들었다. 제작 시기는 19세기 후반으로 좁혀 보는 견해가 있다.

무신도는 본래 굿당 벽에 걸려 신앙의 대상으로 기능하던 그림이다. 벽에서 떼어 온도와 습도가 관리되는 수장고로 옮기는 순간, 신령은 신앙의 대상에서 보호받는 물건으로 신분이 바뀐다. 8점은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맡아 관리하며, 굿당 건물 자체는 2008년에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됐다.

건물과 그림은 각각 다른 시점에 제도 안으로 들어왔다. 집이 먼저 지켜졌고, 그 안에 걸렸던 신령들이 열여덟 해 뒤에 뒤따라 들어왔다.

지정 이후의 전시 계획과 공개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관람객이 할 수 있는 일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의 상설 전시에서 이 동네가 품어온 굿과 신령의 내력을 훑어보는 정도다.

김범수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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