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려지던 에어컨 속 냉매를 다시 모으면 얼마나 될까. LG전자는 2030년까지 폐냉매 회수량을 2024년의 약 7배인 연간 81톤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6평형 벽걸이 에어컨 10만 대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2026년 처음으로 전기·전자, 반도체 소재, 철강, 식품 업종의 기업·산업단지 16곳을 순환경제 선도기업·산업단지로 지정하면서 이런 사업들이 한꺼번에 시동을 걸었다.
협약식은 19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열렸다. 선정된 16곳과 한국환경공단이 손을 잡았고, LG전자·포스코·현대제철·PKC·삼양식품·경남테크노파크·LX판토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과 문갑생 한국환경공단 이사, 이희근 포스코 사장, 이보룡 현대제철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지정이 종전과 갈리는 지점은 지원 단위다. 개별 기업의 재활용 실적 대신 재생원료를 주고받는 기업 협력체계와 지역 산업단지 자체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동전쟁으로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수입 원료를 국내 폐자원으로 갈음할 필요가 커진 사정도 배경에 깔렸다. 지원 기간은 5년이며 폐기물 규제 개선, 실증특례, 공동 기술개발 과제 발굴이 담긴다.
전기·전자 분야에서는 LG전자가 LX판토스, 칠서리사이클링센터, 오운알투텍, 경남테크노파크와 컨소시엄을 꾸렸다. 폐가전 회수와 관리, 해체와 냉매 추출, 정제 효율 향상 기술, 지자체 협력 기반 회수체계 표준화로 역할을 나눴다. 정제한 고순도 재생 냉매는 신제품 생산과 A/S에 쓰인다. 회사 측은 이 사업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승용차 3만 대의 1년 배출량에 해당하는 연간 약 15만 톤으로 설명했다.
반도체 소재 쪽은 PKC와 아데카코리아가 제조 공정 부산물에서 재생원료를 뽑아 전구체를 만들고 이를 다시 반도체 공정에 넣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하프늄은 전 세계 연간 생산량이 70~75톤에 그치는 희소금속이다. 철강에서는 포스코가 신진기업·세림상운·진평과 함께 매립되던 공정분진·슬래그·오니류에서 철과 탄소를 회수해 고품질 재생원료로 가공한다. 현대제철도 흥진개발 등과 철강 분야 과제에 참여한다.
과제 목록에는 재생원료 생산·사용 활성화, 공정부산물 공유, 제품 수리·재사용 체계 강화, 포장재 재활용성 향상이 나란히 놓였다. 식품 업종에서는 삼양식품이 공정부산물 바이오가스화를 맡는다. 규제 개선의 대상 항목과 실증특례 적용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고, 16곳의 전체 명단도 공개 전이다. 5년이라는 기간이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 부분이 빠르게 채워져야 한다.
소비자가 만나게 될 결과물도 있다. 리퍼비시 사업은 회수·진단·수리·검증을 표준화하고 외관과 성능, 안전성 검사를 거쳐 신제품과 같은 수준의 품질 보증을 붙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검증을 통과한 제품은 사업자몰을 통해 소상공인에게 우선 판매된다. 김 장관은 지난달 27일 경기 평택의 한 재활용업체에서 하드디스크에 든 희토 영구자석을 뽑아내는 공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집 안에도 같은 고리의 출발점이 있다. 쓰지 않는 청소기 배터리 하나, 창고에 세워둔 낡은 에어컨 한 대가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매립장으로 갈 수도, 다음 제품의 원료가 될 수도 있다. LG전자가 2022년부터 운영해 온 청소기 폐배터리 수거 캠페인 '배터리턴'처럼 기업이 열어둔 통로는 서랍 정리 한 번으로 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