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가 진 뒤의 푸르스름한 잿빛이 유리 한 장 너머에서 희미하게 번진다. 그 빛을 검은 세로줄 다섯 개가 고르게 가르고, 화면의 네 귀퉁이는 바깥에서부터 어둠에 먹혀 들어간다. 유리 위에는 크고 작은 물방울이 수백 개 매달렸고, 몇 개는 아래로 꼬리를 늘어뜨린 채 멈췄으며, 아래쪽 가장자리 근처에서는 굵은 방울 서넛이 한데 모여 납작하게 퍼졌다.
이런 창을 마주하면 눈의 초점이 어디에 맺힐지 잠깐 망설인다. 바깥의 줄무늬를 보다가 코앞 유리의 물방울로 당겨지고, 다시 멀어진다. 그렇게 몇 번 오가는 사이 미간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 풀리고, 귀 쪽으로 올라붙었던 어깨가 한 마디쯤 내려온다.
숨은 저절로 길어지지도 짧아지지도 않는다. 그냥 들고 난다.
해질 무렵의 머릿속은 대개 낮에 끝내지 못한 일 하나를 붙들고 놓지 못한 채, 유리에 매달린 저 물방울처럼 흘러내리지도 마르지도 않고 버틴다.
창 쪽으로 의자를 반 뼘 당기고 왼손 손바닥을 차가운 유리 아래쪽에 대면, 바깥의 빗소리가 손끝으로 아주 약하게 떨려 온다. 굵게 듣는 소리와 잘게 흩어지는 소리를 가려 듣지 않아도, 일 분쯤 빗소리에 귀를 내주는 동안 저녁은 무너지지 않는다.
설거지하다가 수돗물이 개수대 바닥을 때리는 소리로 귀를 옮겨 와도 된다. 그릇을 헹구는 손은 그대로 둔다. 그 일 분 동안 지켜볼 곳은 턱이다. 어금니끼리 맞닿아 있는지, 혀끝이 윗니 뒤를 누르는지 알아차리기만 하고, 고치려 들지 않은 채 물을 잠근다.
창밖의 검은 줄 다섯 개 사이로, 아까 멈춰 있던 방울 하나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