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헤드폰의 밴드가 검은 머리 위를 가로지른다. 니트 소매를 걷지 않은 팔 하나가 이마 위로 올라와 머리카락을 짚었고, 손톱에는 흐린 회보라색이 남았다. 소파 등받이에 걸친 술 달린 담요, 뒤편 유리장 안의 흰 도자기들, 창에서 스며든 빛이 모두 같은 온도로 풀려 있다. 오후 서너 시쯤, 그늘이 길어지기 직전의 회색이다.
이런 사진을 오래 보고 있으면 몸이 앞서 반응한다. 눈꺼풀이 조금 무거워지고, 화면을 붙잡던 초점이 슬쩍 풀린다. 턱을 물고 있던 느슨해지면서 어깨가 반 뼘쯤 내려간다. 손은 아직 무릎 위에 얹혀 있는데, 손가락 사이에 들어가 있던 긴장이 어느 순간 사라진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확인한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처리할 일이 생기고, 그래서 감는 순간에야 귀가 제 몫으로 돌아온다.
지금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들리는 소리를 다섯 개까지만 세어보아도 좋겠다. 냉장고의 낮은 웅웅거림, 복도에서 지나가는 발소리, 창밖의 차, 옷깃 스치는 소리, 그리고 자기 숨. 다 세었으면 그대로 눈을 뜬다. 삼 분도 걸리지 않는다.
같은 일을 밤에 이불을 덮고 나서 해볼 수도 있다. 불을 끄고 누운 뒤 소리를 헤아리는 동안, 배가 부풀었다 꺼지는 간격이 낮보다 길어지는지 그냥 지켜보면 된다. 무엇이 좋아진다고 기대하지 말고, 길이만 눈여겨본다.
다섯 번째 소리를 세고 나면, 방은 조금 전보다 넓어져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