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잎을 다 떨군 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다. 잔디에 내린 눈은 얇아서 초록이 군데군데 비치고, 오른쪽 흙길에는 누군가 지나간 자국이 어지럽게 남았다. 하늘은 색을 거의 잃은 흰빛이고, 저 끝에서 두 사람이 점처럼 멀어진다.
이런 길에 서면 숨이 코끝에서 한 번 차가워졌다가 안으로 들어온다. 어깨는 저절로 올라가고 손은 주머니 안에서 오므라든다. 발바닥은 신발 밑창으로 눈의 두께를 짚어낸다.
몸이 그렇게 움츠러들 때 마음도 조금씩 서두른다. 빨리 지나가야 할 구간처럼 겨울을 대하게 된다.
그럴 때 삼십 걸음쯤 소리에 귀를 열고 걸어 보자. 얇은 눈이 눌리는 소리, 그 아래 흙이나 마른 잎이 함께 내는 소리. 귀가 발밑에 가 있는 동안에는 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같은 귀 기울이기는 저녁 설거지 앞에서도 열린다. 물소리가 그릇에 닿아 튀는 소리와 거품이 잦아드는 소리가 따로 들릴 때, 수세미를 쥔 손가락에 얼마만큼 힘이 들어가 있는지 한번 살펴도 좋겠다. 접시를 놓칠까 봐 잡아둔 힘일 수도, 낮 동안 굳은 채 그대로 남은 힘일 수도 있다. 세어 볼 것도 고칠 것도 없이 그 힘이 어디쯤인지만 알아차리는 시간이 된다.
흰 하늘 아래 길은 한참 더 이어지고, 그 위로 새 자국이 하나씩 얹힌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