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 블라인드 살 사이로 오후 빛이 가늘게 들어와 벤치 위에 얇게 깔린다. 창밖 나무는 흐릿하게 번지고, 유리에는 지난 비의 흔적이 남아 있다. 페이즐리 무늬가 닳은 벤치 위에 파란 줄무늬 쿠션 하나, 그 곁으로 흰 커튼이 반쯤 흘러내려 있다.
이런 구석을 마주하면 어깨가 저절로 한 뼘 내려간다. 숨이 배까지 내려갔다 천천히 올라오고, 눈의 초점은 창밖 나무 어디쯤에서 풀린다. 손끝이 쿠션의 바랜 결을 더듬는 감각만 남는다.
하루를 다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이런 구석에서 조금 헐거워진다. 끝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몸이 알아차린다.
책을 한 권 들고 여기 앉아 한 쪽만 읽고 덮어도 좋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손을 잠깐 멈추고, 읽은 문장이 사라지는 동안 숨을 세 번쯤 쉬면 어떨까. 덮은 책을 무릎에 두는 것만으로도 오후는 충분히 길어진다.
같은 멈춤은 아침 정류장에서도 가능하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가방끈을 쥔 손을 한 번 놓고, 양쪽 어깨가 서로 다른 높이로 걸려 있는지 살펴보는 정도로 충분하다. 한쪽이 조금 더 올라가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도 된다. 도착 안내판의 숫자가 바뀌는 사이, 어깨가 어디쯤에 놓여 있는지만 눈여겨보게 된다.
블라인드 틈의 빛은 조금씩 옮겨 가고, 쿠션은 여전히 그 온기를 안고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