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창에 맺힌 물방울 하나

배진경·입력 2026. 04. 08. 오후 2:41:00
흐린 저녁, 유리에 붙은 빗방울을 바라보는 짧은 시간
흐려진 바깥이 눈을 쉬게 한다
흐려진 바깥이 눈을 쉬게 한다 / 사진 Sam E Di · Pexels

유리에 물방울이 촘촘히 붙어 있다. 창 너머는 젖은 회색빛이고, 나무의 윤곽만 검게 번져 있다. 빛이 남아 있긴 하지만 곧 저물 시간이어서, 물방울 하나하나가 작은 렌즈처럼 그 마지막 밝기를 담고 있다.

이런 화면을 보면 눈의 초점이 갈 곳을 잃는다. 멀리 보려다 유리에 걸리고, 유리를 보려다 다시 멀어진다. 그 왕복을 몇 번 하다 보면 미간에 들어가 있던 힘이 저절로 풀리고, 어깨가 한 뼘쯤 내려온다. 손끝이 유리 가까이 가면 바깥의 서늘함이 만져지지 않은 채로 전해진다.

비 오는 날에는 하루가 반쯤 미뤄진 기분이 든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바깥이 흐려서, 서두르려던 마음이 갈 데를 못 찾고 안에 고인다. 그 고임을 나쁜 것으로 볼 이유는 없다.

창을 조금 열고 빗소리를 일 분쯤 들어 보면 어떨까. 소리를 세거나 이름 붙이지 않고, 굵어졌다 가늘어지는 결만 따라가 본다. 눈을 감아도 되고 그냥 물방울을 보고 있어도 된다.

같은 일 분은 저녁 설거지 앞에서도 열린다. 물소리가 그릇에 닿았다 미끄러지는 결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싱크대 쪽으로 얼마나 기울어 있었는지 알게 된다. 그때 목 뒤가 어떻게 당겨져 있는지, 오른쪽과 왼쪽이 다르게 뻣뻣한지 정도만 살펴 두어도 좋겠다. 고치지 않고 그저 확인해 두는 쪽으로.

물방울 하나가 창에 매달려 있다가 아래로 길게 흘러내린다. 그 자국을 따라 다음 방울이 온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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