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 감축이 목표 연도 하나를 향한 장거리 달리기에서, 매년 같은 폭으로 내려가야 하는 계단 오르내리기로 바뀌었다. 국회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개정안이 36개 안건과 함께 의결되면서다. 개정안은 감축 방식으로 매년 일정 비율을 줄이는 '선형 감축경로'를 채택했다. 앞으로의 중장기 감축 정책은 이 경로에 맞춰 짜이게 된다.
선형 감축경로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목표 연도의 배출량만 정해 두면 그 사이의 몇 해는 얼마든지 미뤄 둘 수 있다. 앞의 5년을 그대로 두고 뒤의 5년에 몰아서 줄이는 계획도 형식상으로는 목표를 지킨 것이 된다. 반면 매년 줄여야 할 몫이 정해지면 어느 해도 건너뛸 수 없다.
이 차이는 회계장부에 잡히기 전에 현장에서 드러난다. 목표 연도형 계획에서 지자체와 기업은 마지막 몇 해에 대규모 설비 전환을 몰아넣는 시나리오를 짜곤 했다. 연간 배출량이 정해진 경로 위에서는 올해 줄이지 못한 몫이 내년의 부담으로 그대로 넘어간다. 평가 기준이 계획서에서 매년의 실적으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개정법은 2031년 이후의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담은 것으로 파악된다. 경로의 기울기를 결정할 연간 감축률과 기준연도는 공개된 바 없다. 기울기가 정해지는 순간, 감축률은 발전·산업·수송 각 부문이 해마다 감당해야 할 물량으로 곧장 번역된다.
경로가 법에 새겨지는 동안 이를 실행할 조직도 바뀌었다. 기존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기능이 하나의 부처로 통합됐다. 감축 목표를 세우는 쪽과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쪽이 서로 다른 부처에 나뉘어 있던 오랜 체계가 정리된 것이다. 매년의 숙제를 감당하려면 목표와 수단이 같은 책상 위에 놓여야 한다는 점에서, 조직 개편은 경로의 실행 가능성과 직결된다.

같은 시기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 조치도 함께 다뤄졌다. 에너지 가격은 감축의 가장 강력한 신호 중 하나이기 때문에, 요금 조정은 언제나 감축 경로와 한 몸으로 움직인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한국전력의 적자 문제가 더 악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금과 재무, 그리고 감축 경로를 어떻게 함께 풀 것인지가 통합 부처의 첫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흐름을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산업 현장은 전력 비용에 민감하고, 전력 공급자는 재무 건전성을 지켜야 하며, 감축 경로는 그 둘 위에서 매년의 집계를 요구한다. 세 가지 요구가 부딪히는 것은 정책 실패가 아닌 전환기의 정상적인 마찰에 가깝다. 마찰을 조정하는 기준이 이제는 정치 일정이 아닌 법에 적힌 경로가 됐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이재명 정부의 기후 정책은 시행 1년을 지났고, 같은 본회의에서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도 함께 처리됐다. 제도는 이렇게 한 겹씩 쌓이지만, 매년의 감축분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건물과 공장과 도로에서의 선택이다.
가장 처음에 수치가 붙는 곳은 지자체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다. 개정법의 경로가 확정되면 시·도별 감축 계획도 연도별 수치로 다시 짜여야 하고, 그 초안은 대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친다. 내가 사는 지역의 계획서에 올해와 내년의 감축량이 적혀 있는지, 아니면 목표 연도 하나만 크게 적혀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매년의 숙제는 결국 매년 누군가가 들여다볼 때만 숙제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