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흰 헤드폰을 쓴 채 눈을 감으면

배진경·입력 2026. 03. 18. 오후 10:42:00
소파에 기대 소리만 남기는 오후의 몇 분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들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들리는 것들 / 사진 Ivan S · Pexels

흐린 낮의 빛이 유리문 장식장을 지나 소파까지 얕게 번진다. 크림색 니트와 술 달린 담요, 흰 헤드폰이 같은 온도로 부드럽다.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사람은 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눈을 감고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눈꺼풀부터 무거워진다. 초점을 맞출 대상이 사라지자 눈 주위 힘이 풀리고, 어깨가 귀에서 조금 멀어진다. 숨은 짧게 끊기던 것을 그만두고 가슴 대신 배 쪽에서 길게 오간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마음은 계속 무언가를 확인하려 든다. 화면, 시계, 표정, 남은 할 일. 감는 순간 확인할 것이 없어지고,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얼마나 낯설었는지가 드러난다.

지금 앉은 채로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를 다섯 개까지 세어 보자. 냉장고 웅웅거림, 창밖 차 소리, 옷깃 스치는 소리, 자기 숨소리까지. 다섯 번째를 찾다 보면 대개 셋에서 마음이 멈춘다.

같은 세기는 정류장에서도 해볼 만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눈을 감기 어려우면 시선을 발끝에 두고, 들려오는 소리를 헤아리다 보면 흐린 낮의 공기가 코끝에서 조금 차갑게 만져진다. 이때 살펴볼 것은 들이쉬는 숨과 내쉬는 숨 중 어느 쪽이 더 긴가 하는 정도다. 길이를 바꾸려 애쓰지 말고, 지금 어떤 길이인지만 알아채도 충분하다.

눈을 다시 뜨면 방은 그대로인데, 방금 세어 본 소리들이 조용히 뒤에 남아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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