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눈 덮인 길에 남은 발자국

배진경·입력 2026. 03. 10. 오전 10:38:00
나무 사이로 곧게 뻗은 흰 길을 천천히 걷는 아침
소리가 작아질수록 걸음은 또렷해진다
소리가 작아질수록 걸음은 또렷해진다 / 사진 Moin Uddin · Pexels

잎을 모두 내려놓은 나무들이 양옆으로 늘어서고, 그 사이로 길이 곧게 멀어진다. 눈은 두껍지 않아 잔디의 초록이 희끗하게 비쳐 보이고, 하늘은 색을 거의 잃은 흐린 흰빛이다. 저 끝에 사람 둘이 작게 걸어가는데, 얼굴도 옷차림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멀다.

이런 길에 서면 숨이 코끝에서 서늘하게 걸린다. 어깨는 저절로 올라가고 손은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며, 눈의 초점은 가까운 발끝과 먼 소실점 사이를 오간다. 발바닥은 눈 아래 흙이 단단한지 무른지를 신발 너머로 더듬는다.

차가운 곳에 나오면 몸은 목적지부터 떠올린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언제 돌아와야 하는지. 그 계산이 걷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돌아가면 길은 통과해야 할 구간이 될 뿐이다.

귀를 걸음 쪽으로 내려보면 어떨까. 눈이 눌리는 소리는 얇으면 사각, 두꺼우면 뽀득에 가깝고, 같은 길에서도 밟는 곳마다 다르게 난다. 열 걸음쯤 그 소리만 세어 보면 어떨까. 세는 동안에는 남은 거리를 잊게 된다.

같은 세기가 정류장에서도 가능하다. 버스를 기다리며 발끝을 조금 움직여 언 바닥을 눌러 보면, 눈이 얇게 깔린 보도에서도 소리는 길에서와 다르게 난다. 그때 눈여겨볼 것은 들이쉬고 내쉬는 길이가 서로 얼마나 다른지, 찬 공기가 들어올 때 그 길이가 짧아지는지 정도다. 재거나 고칠 것 없이 그저 지켜만 봐도 무방하다.

눈은 곧 녹고, 오늘 낸 소리는 오늘만 들을 수 있다.

배진경 기자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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