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병을 고치는 손과 나팔을 쥐여주는 손

편집부·입력 2026. 05. 22. 오전 10:20:00
톤즈의 의사 사제 이태석(1962~2010)에게 듣는 돌봄과 숨
이태석(1962~2010)
이태석(1962~2010) / 일러스트 ⓒ 브레스저널

진료소 문밖까지 하루 200명에서 300명이 줄을 섰다. 그 줄을 다 보고 나면 저녁에는 악기를 꺼냈다. 병실 열두 개짜리 병원을 지은 사람이 같은 손으로 아이들에게 클라리넷 운지를 잡아주었다. 남수단 와랍주 톤즈에서 이태석이 보낸 시간은 그런 하루의 반복이었다.

이태석은 1962년 부산 남부민동에서 10남매 중 아홉째로 태어났다.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1991년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했다. 200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2월 톤즈에 부임해 병원과 학교, 기숙사, 톤즈 브라스 밴드를 만들었다.

2008년 11월 휴가차 귀국했다가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2010년 1월 14일 서울성모병원에서 47세로 선종했다. 그의 생애는 영화 '울지마, 톤즈'에 담겼다.

Q1. 1999년 방학에 케냐에 들렀다가 인도 출신 제임스 신부를 만나 톤즈로 가셨습니다. 로마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사람이 그 한 번의 방문으로 진로를 정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거기서 본 것은 오래 품고 있던 장면 그대로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동네 교회에서 몰로카이 섬 한센인들과 함께 산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때 저런 삶을 살겠다고 정했지만, 그 다짐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몰라 의대를 나오고 군의관을 하고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톤즈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고 나니 흩어져 있던 것들이 한 줄로 섰습니다. 의사 면허도, 성당 오르간을 독학으로 익힌 것도, 청소년 교육을 하는 살레시오 수도회를 택한 것도요. 그 마을에는 그것들이 전부 필요했습니다.

Q2. 톤즈에서는 병원과 학교를 동시에 지었고 브라스 밴드까지 만드셨습니다. 진료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랐을 텐데 악기를 가르친 까닭은 무엇인지요?

주사기로 안 되는 병이 있었습니다. 내전을 겪은 마을이라 아이들이 총을 들고 다니는 게 이상하지 않았고, 그 손에 다른 걸 쥐여줘야 했습니다. 나팔은 숨을 불어넣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숨을 고르게 쓰는 법을 배우는 일이 그 아이들에게는 치료의 일부였습니다.

초·중·고 12년 과정을 꾸리고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습니다. 기숙사를 지은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밤에 돌아갈 데가 없으면 낮의 수업이 흩어집니다.

병을 고치는 일과 사람을 키우는 일을 나누어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인근 80여 개 마을을 돌며 예방접종을 한 것도 아프기 전에 만나자는 뜻이었습니다.

2002년 남수단 톤즈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이태석 신부
2002년 남수단 톤즈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이태석 신부 / 사진 살레시오회 · CC BY-SA 4.0

Q3.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이 걸려 있는 방식은 그 사람이 사라지면 무너집니다. 2008년 귀국 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셨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제 한계였습니다. 원장이 없어도 병원 문은 열려야 하는데, 저는 제 손으로 하는 일을 줄이지 못했습니다. 하루에 200명, 300명을 보는 사람은 자기 몸을 살필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정을 변명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단을 받고 병상에 누웠을 때 오래 생각한 건 두고 온 아이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학년이 올라가고, 밴드는 새 단원이 들어오고, 병원은 약이 떨어집니다. 그걸 이어받을 사람을 세워두는 일에 저는 늦었습니다.

Q4. 세상을 떠난 뒤 이름을 내건 단체들이 생겨 살레시오회가 여러 차례 경고를 냈습니다. 살아 계셨다면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셨겠습니까?

제 이름은 제 것이 아닙니다. 톤즈 사람들은 저를 파더 쫄리라고 불렀는데, 발음하기 편해서 생긴 별명이지 훈장이 아닙니다. 그 별명이 모금 문구가 되는 건 제가 톤즈에서 한 일과 관계가 없습니다.

수도회가 나서서 상업적 이용을 막아온 것은 그 이름을 믿고 돈을 내는 사람들을 지키려는 일입니다. 후원은 사람을 향해야지 사연을 향하면 안 됩니다.

Q5. 브레스저널은 '숨·쉼'을 축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한센인들에게 오히려 감사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돌보는 사람이 돌봄에서 받는 것이 있다는 뜻인지요?

그렇습니다. 손가락이 없어진 손을 잡아보면 제가 무엇을 붙잡고 사는지가 분명해집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약을 주었고 그분들은 제가 왜 여기 있는지를 알려주었습니다. 주고받는 쪽이 늘 한쪽이라고 여기면 돌봄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호스피스라는 말을 저는 임종의 기술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더는 고칠 수 없는 사람 곁에 남아 있는 일입니다. 톤즈에서는 약이 없어 못 고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 제가 할 수 있는 건 곁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습니다.

2009년 살레시오 수도회 형제들과 브라스밴드를 만든 이태석 신부
2009년 살레시오 수도회 형제들과 브라스밴드를 만든 이태석 신부 / 사진 살레시오회 · CC BY-SA 4.0

숨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나팔을 부는 아이의 숨, 열이 오른 환자의 가쁜 숨, 임종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숨이 다 같은 폐에서 나옵니다. 그것들을 다른 일로 나누면 사람이 조각납니다.

Q6. 2026년 한국에서는 돌보는 사람이 지쳐 무너지는 일이 이어집니다. 톤즈에서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일하다 병을 얻으신 분으로서, 지금 그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제 사례를 미담으로 읽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2008년까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다 넘겼습니다. 그 결과가 4기 진단이었고, 톤즈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헌신으로 포장된 소진은 결국 돌봄을 중단시킵니다.

돌보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제도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교대할 사람이 있는지, 쉬는 날에 대신 문을 열 사람이 있는지가 그 돌봄이 몇 년을 가는지 정합니다. 혼자 오래 버티는 사람을 칭찬하는 대신 혼자 두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저는 병원 하나를 지었지만 교대조를 짜두지는 못했습니다. 그게 제일 아쉽습니다.

Q7. 2005년 남북 수단의 평화협정 소식을 듣고 '슈쿠란 바바'를 지으셨습니다. 다음 세대에 그 곡 대신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다고요?

곡보다는 소리 자체입니다. 저녁에 아이들이 악기를 들고 마당에 모이면 처음에는 다 어긋납니다. 몇 달이 지나면 서른 명의 숨이 한 박자에 들어옵니다.

그 순간에는 누가 어느 부족인지, 누가 총을 들었었는지가 소리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마당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마당이 제가 톤즈에서 한 일의 전부입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이태석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묻는 말은 기자가 썼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편집부 · Breath.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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