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이름을 적는 일이 고릴라를 지켰다

편집부·입력 2026. 07. 20. 오후 4:40:00
다이앤 포시, 르완다 산악림에서 보낸 18년을 말하다
다이앤 포시(1932~1985)
다이앤 포시(1932~1985) / 사진 Tribune Publishing, no photographer cred · 퍼블릭 도메인

젖은 대나무 사이로 낮은 그르렁거림이 들려온다. 한 여성이 몸을 낮추고 같은 소리를 흉내 낸다. 위협할 마음이 없다는 신호였고, 르완다 산악림의 고릴라는 그 인기척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다이앤 포시(Dian Fossey)는 1932년 1월 16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산호세주립대에서 작업치료를 공부해 1954년 학사를 받았고, 켄터키 루이빌의 아동병원에서 일했다. 고생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의 권유로 1966년 아프리카로 향해 1985년 12월 26일 카리소케 연구소 오두막에서 살해될 때까지 18년 동안 산악고릴라를 관찰했다. 세상을 떠나기 두 해 전에는 카리소케의 연구를 담은 책을 냈고, 그 기록은 훗날 영화로도 옮겨졌다.

Q1. 루이빌 아동병원의 작업치료사에서 고릴라 연구자가 되셨습니다. 무엇이 그 전환을 감당하게 했습니까?

열아홉 살 여름을 몬태나 목장에서 보낸 다음부터 동물 곁을 떠나서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계부는 제가 경영을 공부하기를 바랐고, 제가 동물 쪽으로 가겠다고 하자 집안의 지원은 끊겼습니다. 백화점 점원, 실험실 보조, 공장 기계공 일로 스스로 벌어 학교를 다녔습니다.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에서 수의예 과정을 밟다가 화학과 물리에 막혀 2학년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산호세주립대로 옮겨 작업치료를 마쳤고, 결핵 환자와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말을 타는 일로 상을 받은 덕에 1955년 켄터키로 갔고, 이듬해 루이빌의 아동병원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Q2. 초기에는 고릴라 무리에 접근조차 못 하셨습니다. 그 벽을 어떻게 넘으셨는지요?

사람 쪽 습관을 버리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똑바로 선 채 다가가면 고릴라는 그것을 위협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낮게 그르렁거리고, 몸을 낮췄습니다. 그러자 거리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연구 조건은 단출했습니다. 산속 오두막에서 자고,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비탈을 올랐습니다.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그 반복이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고릴라를 22개월 연구한 뒤 멘로파크를 찾은 다이앤 포시가 포스터를 보고 있다
중앙아프리카에서 고릴라를 22개월 연구한 뒤 멘로파크를 찾은 다이앤 포시가 포스터를 보고 있다 / 사진 Tribune Publishing, no photographer cred · 퍼블릭 도메인

Q3. 서식지 관광에 반대하셨고, 직접적인 방식 때문에 긴장이 커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제가 부드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는 지적은 사실입니다. 밀렵 도구를 찾아내 없앴고, 사람들과 정면으로 부딪쳤습니다. 제 방식은 갈등을 키웠고, 그 결과도 제가 감당했습니다.

저는 적극적 보전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순찰하고, 올가미를 걷어내고, 현장에서 막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저를 반대한 이들이 모두 악인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산 아래에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과 관광 수입이 지역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개체군이 그때 무너지면 되돌릴 길이 없다고 봤기에 타협의 폭이 좁았습니다.

Q4. 1977년 디지트가 죽고 나서 연구 시간을 줄이고 보호 활동으로 옮기셨습니다. 그 전환은 슬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디지트는 제가 가장 아낀 개체였습니다. 그가 죽고, 깊이 관찰하던 몇몇이 잇따라 죽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저는 기록을 채우는 일보다 살아 있는 개체를 지키는 일에 시간을 더 썼습니다.

회복이라는 말은 제게 낯섭니다. 대신 저는 카리소케에 고릴라 묘지를 만들어 죽은 개체들을 묻었습니다. 감상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름을 붙이고 묻는 행위는 제 연구의 일부였습니다. 이름 없는 개체는 통계가 되고, 통계는 쉽게 지워집니다.

Q5. 산악고릴라가 2000년을 넘기지 못하리라고 보셨습니다. 그런데도 매일 같은 비탈을 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종이 사라지리라 봤지만, 그것이 관찰을 멈출 이유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연구와 보호 활동이 감소 추세를 늦추는 데 보탬이 됐습니다.

파리 보이 젤렌스키 거리 표지판 아래 붙은 '다이앤 포시 거리' 표지판
파리 보이 젤렌스키 거리 표지판 아래 붙은 '다이앤 포시 거리' 표지판 / 사진 Okhjon · CC BY-SA 4.0

제가 오래 매달린 일은 고릴라가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고릴라는 나라의 경계를 모르고 다닙니다. 지구의 문제도 대개 그렇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만 잘 관리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고, 산 하나를 나눠 쓰는 사람들이 같은 장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Q6. 2026년에는 서식지 축소와 기후 변화가 함께 종을 압박합니다. 선생님이 부딪혔던 밀렵 문제와 겹친다고 보십니까?

올가미는 눈에 보이고 손으로 걷어낼 수 있지만, 산의 기온이 조금씩 올라가는 일은 손으로 걷어낼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저보다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절망을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시절에도 개체군은 바닥에 가까웠고, 그 상태에서도 추세가 꺾인 사례가 나왔습니다. 보전을 홍보 문구로 쓰는 일만은 경계하셔야 합니다. 산에 사람이 몇 명 들어갔고 무엇을 가지고 나왔는지 세지 않으면, 좋은 말은 얼마든지 만들어집니다.

Q7. 카리소케에서 18년을 보낸 사람으로서, 이 일을 시작하려는 젊은 연구자에게 무엇을 건네시겠습니까?

대단한 장비도, 대단한 결심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 개체를 정해 이름을 붙이고, 그가 오늘 무엇을 먹었고 누구와 있었는지 적으십시오. 그 종이가 십수 년 쌓이면 그것이 근거가 됩니다.

비 오는 아침, 젖은 대나무 사이에 앉아 있으면 검은 손 하나가 천천히 다가옵니다. 저는 그 손을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는 분께는 가까운 숲이든 하천이든 한 곳을 정해, 계절마다 같은 곳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적어 두시라고 권합니다. 그 기록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산은 조금 덜 외로워집니다.

이 글은 실제 대담이 아닙니다. 다이앤 포시의 생애와 저작,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브레스저널이 재구성한 가상 인터뷰입니다. 질문은 기자가 만들었고 답은 그가 남긴 글과 행적에서 끌어냈습니다.

편집부 · Breath.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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