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년을 견딘 비석이 갈라지는 일은 벼락처럼 오지 않고, 여러 번의 겨울에 걸쳐 진행된다. 밤새 스며든 물이 얼면서 부피를 늘리고, 화강암의 결을 따라 미세한 균열이 쌓인다. 강릉 보현사의 낭원대사탑비가 해체 보존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그 시간이 마침내 눈에 보이는 균열로 올라왔다는 뜻이다.
비석은 회백색 화강암으로 되어 있고, 표면은 젖었다 마르기를 되풀이해 왔다. 그 몸에 생긴 틈을 두고 유산 당국은 해체와 수리를 택했다. 옳은 조치다. 그러나 이 일이 제기하는 문제는 비석 한 기의 안부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재난은 예측 모형 안에만 있지 않다. 한파와 폭염이 오가는 사이 돌 속으로 물이 드나들고, 결빙과 해빙의 반복이 천 년짜리 강도를 몇 해 만에 허문다. 유산은 기후의 기록 매체가 되었는데, 우리의 보존 체계는 여전히 갈라진 뒤에야 달려간다. 수리 기술을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존을 예보의 영역으로 옮겨야 한다.
반론은 만만치 않다. 손대지 않는 것이 최선의 보존이라는 원칙은 오랜 실패에서 나왔고, 예산과 인력이 한정된 상태에서 훼손이 확인된 유물부터 다루는 순서에도 나름의 합리가 있다. 예방한다며 성급히 개입했다가 원형을 잃은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예방은 손을 대는 일과 다르다. 돌 곁에 온습도계를 두고 결빙 일수를 세는 일, 실금의 폭을 계절마다 기록해 두는 일, 배수로에 쌓인 낙엽을 걷어내는 일은 원형을 건드리지 않는다. 갈라진 돌을 해체해 되붙이면 형태는 돌아오지만, 천 년 동안 한 덩어리였던 그 몸은 돌아오지 않는다. 수리의 성공률이 높다는 사실이 관측을 미룰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보존과 활용 사이의 긴장도 얼버무릴 수 없다. 문을 닫아걸면 유산은 안전해지지만 잊히고, 잊힌 유산에는 예산도 사람도 붙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을 부르면 발길과 손자국과 겨울마다의 관리 비용이 함께 쌓인다. 개방의 폭을 정하기 전에 관찰을 촘촘히 해야 한다.
보현사까지 가기 어렵다면, 사는 동네의 오래된 돌 하나를 골라 겨울과 여름의 상태를 견주어 보아도 좋다. 표면이 가루처럼 일어나는지, 실금이 지난해보다 길어졌는지 확인하는 일은 전문 장비 없이도 가능하다. 다음 한파가 닿기 전에 기록해 둘 것이 그만큼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