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12일 개막한다. 출품 유물은 117건 322점, 대부분 흙 속에 묻혀 있던 사리장엄구다. 전시는 특별전시관에서 10월 11일까지 이어진다. 박물관이 개최 사실을 알린 것은 하루 전인 11일이었다.
황룡사에는 9층 목탑이 있었다. 지금 경주 구황동 벌판에 남은 것은 그 탑을 받치던 심초석과 덮개돌, 그리고 주춧돌의 배열뿐이다. 목재는 남지 않았고 기와도 조각으로만 흩어졌다. 탑이 얼마나 높이 솟았는지는 돌이 짊어졌던 하중의 중심과, 그 돌 한가운데 파인 네모난 구멍이 증언한다.
그 구멍이 사리공이다. 발굴 당시 심초석 하부에서 나온 출토품과 사리공에서 건져 올린 유물들이 이번 전시의 뼈대를 이룬다. 보물로 지정된 '황룡사 찰주본기' 금동 사리함도 그 가운데 하나다.
금동은 세월을 견디되 곱게 견디지 않는다. 표면에는 녹이 앉고 얇은 판은 갈라지며, 글자는 녹층 아래로 잠긴다.
박물관은 수년에 걸친 보존처리를 거쳐 사리공 전체가 금동판으로 장엄된 사리함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돌을 파낸 빈 공간에 그치지 않고 안쪽 벽면까지 금동으로 감싼 하나의 방이었다는 뜻이다. 탑이 사라진 뒤 천 년 넘게 흙에 눌려 있던 형태가 다시 읽힌 것이다. 유물을 닦아내는 일이 곧 사라진 건축을 복원하는 일이 된다.
더 오래 붙드는 것은 이름이다. 찰주본기 사리함 파편에서 김충(金忠)과 연장(連長)을 비롯한 장인 4명의 이름이 새로 판독됐다. 탑을 세운 왕과 승려의 이름은 오래 기록됐지만, 금동판을 두드리고 글자를 새긴 손의 주인은 대개 지워진 채였다. 얇은 금속 위에 스스로의 이름을 남긴 사람들이 파편 상태로 발견됐고, 반세기 뒤에야 읽혔다.
유물을 출토된 그곳에 두면 아무도 볼 수 없고, 꺼내 오면 맥락이 잘린다. 이번 전시는 후자를 택했다. 심초석과 덮개돌, 하부 출토품을 함께 보여주는 구성은 그 선택에 따르는 손실을 조금이라도 메우려는 시도로 읽힌다.
전시 기간에는 '큐레이터와의 대화'와 '우리 가족 황룡사 나들이' 같은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세부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박물관을 이끄는 윤상덕 관장 체제에서 발굴 반세기를 매듭짓는 성격의 기획인 만큼, 유물 진열을 넘어선 해석의 폭이 어디까지 열릴지가 관전점이다.
전시장을 나와 차로 십여 분이면 황룡사지에 닿는다. 황룡사지에는 심초석과 덮개돌, 주춧돌이 남아 있다. 10월 11일까지, 두 곳을 하루에 연결하는 걸음이 가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