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뷰티 업종 기업들이 한 주 사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잇따라 내놨다. 보령은 2026년 6월 4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2026' 발간을 알렸고, 일동제약과 에이피알은 6월 5일 각각 '2026년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창사 이후 첫 보고서를 공개했다. 세 곳 모두 법으로 발간이 강제되지 않는 자율 공시 영역에 속한다.
세 보고서의 대상 기간은 대체로 겹친다. 일동제약은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를 보고 기간으로 잡았고, 에이피알은 2025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를 대상으로 했다. 보령 보고서 역시 2025년의 ESG 경영 활동과 성과, 중장기 추진 전략을 담았다.
겹치지 않는 것은 작성 기준이다. 에이피알은 보고서를 GRI Standards 2021에 따라 작성했고 SASB 표준과 UN SDGs 등 국제 공시 지표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보령과 일동제약 보고서가 어떤 국제 기준을 적용했는지는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같은 이름을 단 문서가 서로 다른 잣대로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담긴 내용의 결도 다르다. 일동제약은 중대성 평가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인재 확보 및 인적 자원 역량 강화, 제품 품질 및 안전 관리, 폐기물 감축 및 자원순환,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강화 등 5대 핵심 이슈를 선정했다. 에이피알은 이중 중대성 평가를 바탕으로 핵심 이슈를 도출했다고 했으나 항목과 개수는 밝히지 않았다. 보령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세웠고, 예산캠퍼스가 한국에너지공단의 자발적 에너지효율목표제 우수 사업장에 2년 연속 선정됐다고 소개했다.
정량 지표는 드물게 등장한다. 일동제약은 2025년 폐기물 재활용률이 70%를 넘었다고 밝혔으나 산정 범위는 명시하지 않았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공시 핵심 지표 준수율은 전년 대비 60%포인트 높아졌다고 적었는데, 전년과 당해의 절대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상승 폭만 제시되면 출발점이 낮았던 것인지 도달점이 높은 것인지 독자가 가려낼 방법이 없다.
보령의 서술에서도 폭이 흔들린다. 국가필수의약품인 경구용 페니실린계 항생제 생산시설 증축을 2025년에 진행했다는 내용은 공통되지만, 연간 생산능력 확대 폭은 2배 이상으로도, 2배로도 표현된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평가 A등급 역시 평가 연도 표기가 일정하지 않다. 이 회사는 세포독성항암제의 세계적 공급 부족에 대응해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이며, 국내 최초로 소세포폐암 환자 가이드북을 발간했다고 밝혔다.
자율 공시의 한계는 다른 업종 사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안전·보건 투자액은 35억원으로, 같은 해 영업이익 1조7247억원의 0.2% 수준이었다. 2023년 투자액 72억원의 절반에 못 미치고, 직전 연도 보고서가 밝힌 2024년 집행 예정액 76억원에도 미달했다.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로 사상자 7명이 발생한 뒤 6월 4일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서울 본사와 대전사업장 등을 압수수색했고, 확보된 전자정보 5400여 점에 대한 포렌식 분석이 6월 5일 기준 진행 중이다.
보고서에 적힌 예정액과 실제 집행액이 벌어져도 이를 걸러내는 절차는 자율 공시 체계 안에 마련돼 있지 않다. 제3자 검증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검증 수준이 제한적인지 합리적인지도 이번에 나온 세 보고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검증이 붙지 않은 자율 공시는 회사가 스스로 고른 지표를, 스스로 정한 방식으로 셈한 결과에 머무른다.
국내 ESG 공시 의무화의 적용 대상과 시행 시점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 사이 비의무 업종의 자율 발간은 늘고 있고, 기준 통일과 검증 체계 논의는 그 뒤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세 회사의 다음 보고서는 2027년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보이며, 그때 같은 지표가 같은 방식으로 다시 제시되는지가 이번 발간의 실효성을 가늠할 근거가 된다.
발간 건수는 세기 쉽다. 어려운 것은 그 안의 70%와 60%포인트와 35억원이 무엇을 재고 무엇을 빼놓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보고서를 읽는 쪽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상승률 옆에 절대 수치가 함께 적혀 있는지, 대상 기간과 산정 범위가 명시돼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두 가지가 빠진 지표는 지금으로서는 회사의 설명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