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5월 4일(현지시간) 기업 기후공시 규정 폐지안을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넘겼다. 바이든 행정부 때 만들어진 이 규정은 상장사에 기후변화 관련 사업 위험과 일부 기업의 탄소배출량을 공시하도록 요구했으나, 소송이 이어지며 실제 시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는 지속가능성 공시를 법정공시로 못 박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여야 양쪽에서 나왔다. 한쪽은 규정을 걷어내고 다른 쪽은 법으로 굳히는 국면이 만들어졌다.
국내 입법 흐름부터 보면 발의 주체는 셋이다.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 등 야당 의원 11인이 4월 21일 발의한 개정안은 지속가능보고서를 사업보고서와 같은 공시 체계에 넣고, 허위 기재나 미제출에 과징금과 형사처벌을 적용하도록 했다. 세이프하버 조항은 두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민병덕 의원도 앞서 각각 법정공시 전환을 담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세 법안의 강조점은 갈린다. 박상혁 의원안은 거래소 공시 단계를 건너뛰고 곧장 법정공시로 가되, 대상을 2028년 자산 10조원 이상, 2029년 2조원 이상, 2030년 1조원 이상으로 넓히는 일정표를 붙였다. 민병덕 의원안은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해 중복 보고 부담을 덜고, 세이프하버와 인센티브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는 데 비중을 실었다. 강제와 유인 중 어디에 기대느냐가 세 안을 가른다.
규제 당국의 밑그림은 이와 어긋나 있다. 금융위원회가 2월 25일 내놓은 지속가능성 공시 로드맵 초안은 2028년 자산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의무화하고 이후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예시를 담았다. 도입 형태도 초기에는 거래소 공시로 가고 법정공시 전환 여부와 시기는 나중에 검토한다는 것이었다. 시작 대상의 자산 규모도, 공시의 법적 성격도 국회 법안들과 맞물리지 않는다.
금융위는 의견 수렴을 마친 최종 로드맵을 이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초안보다 강화된 내용이 들어갔다는 말이 나오지만 확정 공표된 사항은 아니다. 대상 기업의 자산 기준과 적용 연도, 거래소 공시와 법정공시 중 어느 형태로 출발할지가 이번 발표에서 정리될 부분이다.
대륙 쪽 규제는 또 다른 갈래로 움직인다. EU 집행위원회는 탄소시장이 적용되는 산업을 상대로 40억유로(약 6조4000억원)어치 배출권을 무상으로 더 나눠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26~2030년 무상할당 기준을 산정할 때 직접 배출과 간접 배출을 함께 계산에 넣기로 했다.
기준 확정은 6월 초, 실제 발급 시작은 빠르면 7월 하반기로 잡혀 있다. EU는 옴니버스 패키지 입법으로 지속가능성 공시의 시기와 범위도 손봤다.
기업이 맞춰야 할 기준 자체는 2023년에 두 종류로 정리됐다. EU의 ESRS는 규제 준수 여부를 알리는 성격이고, IFRS 산하 ISSB 기준은 투자자와 주주를 향한 사업활동 보고에 가깝다. 여기에 EFRAG가 오는 7월 비EU 기업 보고기준 초안과 2026년 로드맵을 내놓을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상장사 중 유럽 매출 비중이 큰 기업일수록 대응 부담의 계산이 복잡해진다.
공시가 재무적 지표와 연결된다는 분석도 나와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NABO 산업동향 & 이슈' 81호는 지속가능성 공시를 하는 기업의 외국인 투자자 지분율을 18.7%로 집계했다. 비교 대상인 미공시 기업의 지분율이 함께 제시되지 않아 격차의 폭은 이 수치만으로 가늠하기 어렵다.
SEC 폐지안은 OMB 검토가 끝난 뒤 위원회 표결과 의견수렴을 거쳐야 결론이 난다. 국내에서는 금융위 최종 로드맵이 이달 중 공개되고, EU 배출권 무상할당 기준은 다음 달 초 확정된다. 세 일정이 두 달 안에 몰려 있어, 그때까지 나오는 결정들이 기업 공시 실무의 향후 몇 년을 좌우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