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스저널 The Breath Journal

30조냐 10조냐, 공시 문턱 놓고 갈린 요구

플래닛·입력 2026. 04. 03. 오전 10:37:00
인권위는 1년 단축·10조원, 의원안은 법정화·세이프하버 제시
공시 의무 대상을 가르는 자산 기준이 주체마다 다르게 제시됐다
공시 의무 대상을 가르는 자산 기준이 주체마다 다르게 제시됐다 / ⓒ 브레스저널

금융위원회가 2026년 2월 25일 내놓은 'ESG 공시 제도화 방안' 초안을 두고 제도 설계의 쟁점이 잇따라 표면화하고 있다. 초안은 2028년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상장기업에 지속가능성 공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달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로드맵을 확정할 계획인데, 마감을 앞둔 지난주에만 국가인권위원회 의견표명과 국회 법안 발의가 연이어 나왔다.

인권위는 3월 31일 금융위원장에게 의견을 표명했다. 의무화 시기를 2028년에서 2027년으로 1년 앞당기고, 대상도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기업부터 시작하라는 내용이다. 공시 기준에 인권 관련 지표를 넣어 인권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사회(S) 분야 의무화 일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요구도 함께 제시했다. 법정공시 전환 시기를 명확히 하고 중소·중견기업 지원책을 마련하라는 항목도 포함됐다.

초안의 자산 기준 30조원은 여러 주체가 동시에 겨냥한 지점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같은 날 의견서를 내고 기준을 5조원으로 낮출 것을 제시했다. 초안 발표 이후 최초 적용 대상 기업 규모는 59개사 추정, 약 50~60개사, 코스피 상장기업의 7% 등으로 서로 다르게 언급돼 왔고, 확정 집계는 공표 전이다.

대상 범위를 좁히는 장치도 초안에 들어 있다. 종속회사 가운데 자산이나 매출액이 연결기준 10%에 못 미치는 곳은 공시 첫해 연결 대상에서 빼는 것이 허용된다. 첫해 공시는 시범 형태로 진행되고, 전년 수치와 견주는 비교공시는 2029년부터 가능해진다. 30조원 기준을 넘는 기업 중 절반가량이 금융업이며 철강·화학의 일부 기업은 의무 대상에서 빠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배출량 항목에서는 스코프 3 유예기간이 쟁점이다. 초안은 3년을 부여했고 국제기준인 ISSB S2는 1년으로 두고 있어 격차가 2년이다. 인권위는 국제기준을 고려해 이 기간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기후·시민단체 쪽에서는 기업 배출량의 70~80%가 스코프 3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나왔고, 3월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녹색전환연구소, 플랜1.5, 빅웨이브가 초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제화 방식은 별도의 축이다. 초안은 도입 초기 거래소 규정에 따른 공시로 운영하다 자본시장법상 법정공시로 옮기는 경로를 잡았으나, 언제 옮길지는 적히지 않았다. 금융위는 의견수렴이 끝난 뒤 전환 시점을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현행 거래소 체계에서는 공시 오류가 나도 거래소 내부 제재만 면제될 뿐 민·형사상 책임은 그대로 남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거래소 공시로 출발해 법정공시로 옮기는 전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
거래소 공시로 출발해 법정공시로 옮기는 전환 시기가 정해지지 않았다 / ⓒ 브레스저널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김포시을)은 3월 30일 자본시장법 일부개정법률안(의안번호 2217852)을 대표발의했다. 지속가능성 사항을 사업보고서에 담도록 법정화하고, 금융위가 국제 정합성을 고려한 기준을 정해 공시와 제3자 인증 체계를 갖추도록 하는 내용이다. 인증 기준을 금융위가 정하되 인증 업무는 민간 법인·단체에 위탁할 수 있게 한 조항도 들어갔다. 적용 대상은 2028년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에서 출발해 1조원 이상까지 단계적으로 넓히고, 1조원 미만 기업의 시기는 시행령에 맡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업 책임 완화 장치도 함께 담겼다. 세이프하버를 도입해 형사책임은 영구 면책하고, 도입 초기 2개 사업연도에는 고의가 없는 경우 민사책임과 과징금을 면제하는 내용이다. 회계 영역에서는 2015년 대우조선해양과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계기로 감사인 지정제 확대와 주기적 지정제가 도입된 전례가 있어, 인증 체계의 감독 설계가 뒤따라 논의될 소지가 있다.

기업 쪽에서는 시행을 미루는 데 따른 부담을 지적하는 발언도 나왔다. 포스코홀딩스 김훈태 지속가능경영사무국장은 공시 기준과 로드맵이 거듭 연기되면서 기업과 유관기관이 불확실성을 겪었다며, 범위를 제한하더라도 일단 시행한 뒤 보완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영국·일본·호주가 스코프 3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거나 자율공시와 병행한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됐는데, 각국 제도의 세부는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대외 일정도 변수로 거론된다. 대만이 2026년, 일본이 2027년 지속가능성 공시를 법정공시로 시행하고, 싱가포르·홍콩을 비롯한 주요 37개 권역이 ISSB 기준에 맞춰 법정화하는 흐름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EU와 호주는 2025년 관련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초안대로라면 첫 공시가 2028년에 이뤄지므로, 국제 정합성 논의는 확정 로드맵의 시기 조항과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

금융위는 기존 420조원 규모의 전환금융을 녹색·전환을 아우르는 790조원 규모 기후금융으로 늘리고, 새로 공급하는 기후금융의 절반 이상을 지방에,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배분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제시했다. ESG 공시는 '제4차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다뤄졌다.

확정 로드맵이 나오면 시행 시기, 자산 기준, 스코프 3 유예, 법정공시 전환 시점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30조원과 10조원, 5조원 사이 어디에 선이 그이는지에 따라 2028년 첫 공시를 준비해야 하는 기업의 범위가 달라진다. 의견 수렴 마감은 이달이다.

플래닛 기자 · Breath.E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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