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2월 25일 내놓은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 로드맵 초안을 두고 국제 책임투자 기관들과 국내 대기업이 같은 주에 상반된 주문을 내놨다. PRI(책임투자원칙)와 ACGA(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 KoSIF(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3개 기관은 3월 24일 초안 강화를 요구하는 공동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경제인협회는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30조 원 미만 코스피 상장사를 상대로 한 공시 대응 실태조사에서 인력과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전면에 세웠다. 초안 의견 수렴은 3월 말로 마감된다.
초안의 골격은 두 단계다. 연결자산총액이 큰 코스피 상장사부터 순차 적용하고, 한국거래소 공시로 시작해 이후 법정공시로 옮긴다. 배출량 항목 가운데 공급망 전반을 포괄하는 스코프3(Scope 3)에는 별도의 유예 기간이 붙었다. 금융위가 ESG 공시 의무화 계획을 처음 공개한 것은 2021년으로 파악된다.
공동 서한이 담은 요구는 세 갈래다. 국제회계기준 계열의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인 IFRS S1·S2와 국내 기준을 어긋나지 않게 맞출 것, 이행 시점표를 모호하지 않게 그리고 목표를 낮추지 않게 짤 것, 거래소 자율 영역에 두지 말고 법정공시 안으로 넣을 것이다. 서한은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KSSB), 국회 ESG포럼에 함께 전달됐다.
세 기관은 로드맵 발표 자체는 시장 불확실성을 걷어낸 조치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초안 수준이 국내외 투자자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봤다. 경제 전반의 비교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대규모 상장사와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기관을 조기에 의무 대상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문이다. 기후공시 외 자율공시 항목이 언제 의무로 바뀌는지도 명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PRI는 서명기관 5000곳 이상, 이들이 대표하는 자산 139조6000억 달러 규모의 책임투자자 협회다. ACGA 회원 투자자들의 운용 자산은 40조 달러를 넘는다. 두 수치 모두 기준 시점은 공개 전이다. 초안 강화를 요구한 이들도 스코프3 배출량과 전환계획처럼 산정이 복잡한 항목에는 단계적 접근이 유효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한경협 실태조사의 응답 기업은 36개사 중 27개사다. 의무화 시점에 맞춰 준비가 가능하다는 응답은 70.4%였다. 그러나 공시 전담 인력을 따로 두지 못하고 다른 업무와 겸하는 곳이 55.6%, 제조업만 보면 58.3%다. 준비가 된다는 응답과 인력 운용 실태 사이의 간격이 조사의 핵심 수치다.
스코프3에서 응답은 절반씩 갈렸다. 정부 일정에 맞출 수 있다는 답이 48.1%, 2033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답이 51.9%로 집계됐다. 제조업에서는 66.7%가 유예를 요구했다. 유예가 필요한 이유로는 협력사의 측정역량 부족과 데이터 신뢰성 저하가 83.3%(복수응답)로 가장 많이 지목됐다.
기업들이 정부에 바라는 지원은 산업별 구체적 가이드라인 제공 44.4%, 데이터 수집용 표준 플랫폼 구축 44.4%로 같은 비율에서 갈렸다. 송재형 한경협 지속가능경영실장은 전문인력 확보와 공급망 배출량 데이터 측정·확보에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요구를 겹쳐 놓으면 강화 요구와 준비 부담 호소가 결국 같은 지점, 즉 공급망 데이터의 품질을 가리킨다.
3월 23일 서울 FKI 컨퍼런스센터에서는 한국투자자포럼 제3회 학술토론회 'ESG 법제화 동향과 투자자보호'가 열렸다. 최중경 IFRS재단 이사와 정석우 한국투자자포럼 대표를 비롯한 경영·회계·법학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국제 기준과 국내 법제를 거치는 설계를 놓고 학계·회계 쪽 논의도 같은 주에 이어진 이야기다.
최종안은 4월 중 확정될 예정이다. 확정안이 초안의 적용 시점표와 스코프3 유예 기간을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 30조 원 이상 기업은 첫 보고서 작성 시기를, 10조~30조 원 구간 기업은 겸직 인력 체계를 언제 바꿀지를 계산하게 된다. 의견 수렴 창구가 닫히는 날까지 남은 시간은 엿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