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2026년 2월 공개한 지속가능성(ESG) 공시 로드맵 초안을 두고 의무화 시점과 대상 범위를 다시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초안은 2027회계연도(2028년 공시)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공시를 의무화하고 단계적으로 넓히는 내용으로, 초기 대상은 약 58개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3월 30일 의견서를 냈고, 더불어민주당은 4월 7일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상향 조정을 요구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달 말 일정 변동 없이 최종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기준선의 이동 폭은 2021년 계획과 비교하면 뚜렷하다. 당시 금융위 계획은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2025년부터 의무화해 2030년까지 전체 상장사로 확대하는 내용이었다. 이번 초안은 자산 기준을 30조원으로 올리고 시행 시점을 뒤로 미뤘다. 도입 초기에는 한국거래소 공시 형태로 운영한 뒤 이후 법정공시로 전환하는 설계다.
국민연금은 서원주 기금이사 명의로 금융위원회와 한국회계기준원 등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도입 시기를 2026회계연도(2027년 공시)로 1년 앞당기고, 의무 대상을 연결자산총액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넓힐 것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가치사슬 전반 배출량인 스코프3의 의무화 시점도 2029년 전후로 당기자는 의견을 냈다. 초안은 스코프3에 3년의 유예를 둬 2031년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국민연금이 든 근거 가운데 하나는 대상 58개사의 업종 구성이다. 이 중 29개가 금융기관이어서 산업 전환 리스크가 큰 제조기업이 충분히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소규모 종속회사를 대상에서 제외하는 '자산·매출액 10% 미만 예외 조항'의 수정도 함께 요구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2026년 1월 기준 약 330조원이다.
국민연금의 기업 관여 활동은 최근 몇 년 사이 확대됐다. 3월 31일 공개된 수탁자 책임 활동 내역에 따르면 2025년 '기업과의 대화' 대상은 158개 상장사로 2024년 147곳 대비 7.5% 늘었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을 이유로 주주활동을 벌인 상장사는 2024년 13곳에서 2025년 50곳으로 285% 증가했다. 비공개면담은 2022년 11건, 2023년 12건, 2024년 6건에서 2025년 50개사 대상 69건으로 늘었다.
여당의 요구는 입법으로도 이어졌다. 4월 7일 당정협의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거래소 공시 단계를 거치지 않는 법정공시 즉시 도입, 자산 30조원 미만으로의 대상 확대, 기후 외 환경(E)과 사회(S)로의 범위 확대를 요구했다. 박상혁 의원은 대상을 2028년(2027회계연도) 자산 10조원 이상, 2029년 2조원 이상, 2030년 이후 1조원 이상으로 넓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병덕 의원은 4월 8일 상장기업 ESG 정보를 법정공시화하는 개정안을 냈다.
초안의 형성 과정을 놓고는 설명이 엇갈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초안이 사실상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마련됐고 산업부가 연기와 대상 축소를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부·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한 것이며 산업부 의견을 더 비중 있게 반영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금융위 권대영 부위원장은 2월 제조업 기반 산업구조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24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등 4개 경제단체가 2029년 시행을 건의했다.
국회에서도 지적이 나왔다. 3월 31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초안이 문재인정부 안보다 후퇴했다고 지적했고, 4월 6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박지혜 의원은 글로벌 기준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있다고 언급했다. 해외에서는 EU가 2024년부터 CSRD로 대규모 기업 공시를 의무화했고, 영국·호주·대만·중국이 2026년부터 단계적 의무화에 들어간다. 일본은 2027년 법정공시 도입을, 싱가포르는 2025년부터 모든 상장사 의무공시를 적용하고 있다.
쟁점은 세 갈래로 좁혀진다. 자산 기준선을 30조원에 둘지 그보다 낮출지, 거래소 공시 단계를 거칠지 법정공시로 곧장 갈지, 사회·지배구조 항목과 스코프3를 언제 의무 범위에 넣을지다. 최종안의 세부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고, 발표 예정 시점은 이달 말이다. 국회에 올라간 두 건의 개정안이 남아 있어 정부안이 나온 뒤에도 논의는 상임위로 옮겨갈 여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