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28일 '세계유산 창덕궁과 종묘에 사용된 석재의 과학정보' 보고서를 냈다. 창덕궁 2922점, 종묘 1499점을 더한 4421점의 돌을 하나씩 들여다본 결과, 그 대부분이 담홍색 화강암이었다. 왕조가 궁궐과 사당을 세울 때 어떤 돌을 어디서 가져왔는지가 계량적으로 정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담홍색 화강암은 이름 그대로 흰 바탕에 옅은 살구빛이 번진 돌이다. 장석 알갱이가 붉은 기를 머금고 있어 비 온 뒤나 해가 낮게 들 때 특히 붉게 살아난다. 손바닥을 대면 까슬한 결정이 만져지고, 발로 밟으면 사암보다 단단하고 마른 소리가 난다.
연구원이 서울 일대의 산을 훑어 확인한 결과, 안산과 인왕산·북악산을 비롯한 도성 주변 산지에 이 돌과 같은 계열의 중립 내지 조립질 담홍색 화강암이 분포한다. 궁궐 마당의 박석과 종묘의 기단이 도성을 둘러싼 능선과 같은 광물 조성을 지녔다는 뜻이다. 어느 봉우리가 실제 채석장이었는지까지 하나하나 못 박은 것은 아니며, 같은 암체가 그곳에 분포한다는 지질학적 대응 관계를 밝힌 단계다.
수치로 보면 창덕궁은 2020년 돈화문 월대 복원과 1994년 인정전 복원 등에 들어간 흑운모 화강암 신부재를 빼면 90퍼센트 이상이 담홍색 화강암으로 파악된다. 종묘는 그 비율이 99퍼센트를 넘는다. 조상의 신주를 모신 공간일수록 돌의 결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통계라는 건조한 언어를 통해 드러난 셈이 됐다.
이 조사는 2023년 시작된 '서울 궁궐과 종묘 석조문화유산의 과학적 조사사업'의 결실이다. 국가유산청은 석조문화유산을 원형대로 되살리려면 본래 것과 같은 재질의 돌이 있어야 하지만, 조성 당시의 산지 기록이 남지 않았거나 그 산에서 지금은 돌을 뜰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도성 안팎의 산은 대부분 보호구역이 됐고, 채석은 그 자체로 산을 깎아내는 일이다.
보존과 활용이 부딪히는 지점이 여기다. 원형에 가장 충실한 복원은 원래의 산을 다시 여는 것이지만, 그 산 역시 지켜야 할 대상이다. 연구원이 옛 문헌을 뒤져 실제 채석지와 대체 채석지 정보를 함께 정리한 이유이며, 보고서에 서울과 포천 일대 화강암의 광물·지구화학적 비교가 실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포천 돌이 대체재로 채택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재질 분석 결과는 도면 위에 색으로 얹혔다. 어느 계단의 어느 돌이 원래의 것이고 어느 돌이 뒤에 갈아 끼운 것인지가 한눈에 보이는 형태다. 궁궐을 한 채의 건물 대신 수천 개의 개별 돌이 모인 집합으로 다시 읽게 만드는 방식이다.
임종덕 국립문화유산연구원장이 이끄는 이 조사의 결과물은 국가유산 지식이음 누리집에서 전자책으로 값 없이 열람할 수 있다. 화면을 덮고 나면 걸어볼 만한 길이 남는다. 돈화문으로 들어가 인정전 앞마당의 박석을 지나 종묘 정전의 기단까지 걷는 동안, 발밑의 붉은 기를 눈여겨보면 된다. 고개를 들면 그 색을 그대로 지닌 인왕산 능선이 담장 너머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