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북구 연경동 태봉마을의 광해군 태실이 국가유산청의 국가사적 지정 대상 19기에 포함된 것으로 파악된다. 국가유산청은 2025년 전국 태실을 대상으로 한 용역을 거쳐 이 목록을 추렸고, 지금은 2차 심화용역이 진행 중이다. 폐위된 임금의 태를 묻은 땅이 국가의 공식 기억 목록 안으로 들어오는 첫 단계다.
태실은 함지산과 도덕산, 응해산이 둥글게 감싼 팔공산 자락 낮은 봉우리 위에 있다. 태봉이라는 마을 이름 자체가 그 봉우리에서 왔다. 능선을 따라 오르면 무릎 높이의 철제 울타리가 나오고, 그 안쪽 흙은 푸른 방수 비닐에 덮여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비닐 위로 물이 고이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얇은 합성수지가 마른 소리를 낸다.
이 땅에서 무엇이 나왔는지는 오래전에 정리됐다. 2013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시굴조사 결과를 냈고, 본 발굴은 2018년 (재)다온문화재연구원이 맡아 2020년 『대구 연경동 광해군 태실』이라는 학술조사보고서로 묶였다. 태함을 안치했던 토광, 석물을 받치기 위해 내외로 두 겹 돌린 적심석, 비를 세웠던 귀부가 드러났고 아기태실비와 가봉태실비, 개첨석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이곳을 아기태실을 조성한 뒤 같은 봉우리에 가봉이 다시 이뤄진 복합유적으로 결론지었다.
발굴에는 국비 1억 원이 들어갔다. 그 뒤 북구청이 한 일은 울타리를 두르고 잔디를 심는 정도였다. 태를 담았던 백자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이 봉우리에 없다. 도굴을 거쳐 흩어졌다가 1990년대에 보물로 지정됐고, 지금은 용인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땅과 유물이 갈라선 채 여섯 해가 흘렀다. 북구청은 그동안 국가사적 지정을 거듭 요청해 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배광식 북구청장이 이끄는 기초지자체가 신청서를 만들어도 절차는 곧바로 국가로 가지 않는다. 대구시에 올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비로소 국가유산청 문턱에 닿는다.

시·도 지정 문화유산에 머무는 한 다음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세계유산 등재 신청 자격은 국가지정문화재에만 주어지고, 지자체가 지정한 유산은 그 명단에 오르지 못한다.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는 가봉태실은 성주 세조태실, 영천 은해사 인종태실을 포함해 일곱 곳이며, 이를 밀고 있는 광역단체는 경북·충남·충북 세 곳이다. 대구는 그 지도에 없다.
전국의 태실은 150여 기로 헤아려진다. 그중 54기는 일제강점기에 경기 고양 서삼릉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왕실이 아이의 태를 산 정상에 묻던 관습은 그때 한 번 크게 흩어졌고, 남은 것들은 산등성이마다 각자 늙어 갔다.
광해군의 것은 파헤쳐진 뒤 학술적으로 기록됐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정이 나은 편에 든다. 시굴과 본발굴이 모두 끝나 원형 복구가 가능한 상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복구에 얼마가 드는지, 국비가 얼마나 붙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2차 심화용역은 2026년 연말 마무리되고, 결과보고서는 2027년 초 해당 지자체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그 종이 한 뭉치가 도착한 뒤에야 대구시가 문화재위원회를 열지 말지가 실무의 현실이 된다. 지금 이 봉우리에서 확실한 것은 비닐 한 장뿐이다.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끌려 내려온 임금의 태를 국가가 유산으로 품을 것인가. 이 논의는 왕조가 지운 이름을 후대가 어디까지 되살릴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경동 태봉마을 뒷길은 봄이면 걸어 오를 만하고, 능선 끝 평평한 정상부에 서면 함지산 쪽으로 팔공산 자락이 겹겹이 펼쳐진다. 그 발밑에 무엇이 묻혔다가 파헤쳐졌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