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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누각 광한루, 국보 예고를 받다

루츠·입력 2026. 04. 24. 오후 3:05:00
호남제일루의 목재와 춘향의 이야기가 한 도시의 기억이 된 내력
호남제일루로 불려온 남원 광한루의 정면
호남제일루로 불려온 남원 광한루의 정면 / 사진 Asfreeas · CC BY-SA 3.0

국가유산청이 '남원 광한루'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관영 누각, 오래도록 '호남제일루'로 불려온 그 목조 건물이다. 예고는 24일자로 이뤄졌다.

광한루의 몸은 나무다. 굵은 기둥이 마루를 떠받치고, 마루는 사람의 발보다 조금 높은 높이에서 물 쪽으로 열린다. 여름에 오르면 나무가 머금었던 눅눅한 냄새가 코에 먼저 닿고, 발을 옮길 때마다 마룻널이 낮게 삐걱인다. 4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목재의 소리는 그렇게 사람의 몸무게로만 확인된다.

기원은 광통루라는 이름의 작은 누각이었다. 황희가 남원에 유배됐을 때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이 건물이 뒤에 광한루가 됐다. 이후 이곳은 관리와 문인들이 모여 연회를 열고 시문을 주고받는 공간으로 쓰였다. 누각은 관청의 시설이면서 동시에 시가 오가는 무대였다.

누각 둘레의 풍경도 사람이 만든 것이다. 호수를 파고 봉래·방장·영주라는 세 개의 섬을 띄웠으며, 그 물 위로 오작교를 놓았다. 정철과 장의국의 손을 거친 것으로 파악된다.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의 이름을 그대로 옮겨 붙인 이 배치는, 지상의 정원에 하늘의 지리를 겹쳐 놓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의 불길이 남원을 삼키면서 누각은 사라졌다. 다시 세운 이는 남원부사 신감이다. 1626년, 지금과 같은 규모로 중건된 이 건물은 이후 큰 형태 변화 없이 그 터를 지켜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가 오늘 오르는 마루는 그때 짜인 골격 위에 놓여 있다.

누마루에서 바라보면 연못과 다리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누마루에서 바라보면 연못과 다리가 한 화면에 들어온다 / ⓒ 브레스저널

광한루가 남원 바깥까지 알려진 것은 건축 때문만은 아니었다. 판소리와 고전소설 '춘향전'이 이 누각을 무대로 삼았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눈을 맞춘 장소로 이 건물이 지목되면서, 목조 누각 한 채는 한 도시의 이야기를 통째로 떠맡게 됐다. 남원이라는 지명이 사랑의 서사와 붙어 다니게 된 출발점이 여기다.

그래서 광한루를 읽는 눈은 둘로 갈린다. 하나는 17세기 목조 건축의 완성도를 보는 눈이고, 다른 하나는 설화가 덧입힌 상징을 보는 눈이다. 정원과 건물이 따로 놀지 않고 하나의 경관을 이루는 사례로 평가받는 것도 이 겹침 덕분이다. 국보 예고는 두 시선 중 앞의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에 가깝다.

긴장은 여기서 생긴다. 이야기의 힘이 클수록 사람이 몰리고, 사람이 몰릴수록 400년 된 마룻널과 기둥은 닳는다. 국가유산청은 지정 예고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격을 높이는 결정이 곧바로 출입을 넓히는 결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누각의 나이는 조용히 일러준다.

국보 지정이 확정되는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 예고 기간을 지나 심의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그 사이에도 광한루원의 문은 열려 있고, 연못의 물은 계절마다 색을 바꾼다.

봄이 저물어가는 지금, 남원의 그 마루에 올라보길 권한다. 신발을 벗고 나무 위에 서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서늘함이 있다. 4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발이 지나간 자국이 만든 온도다. 그 감촉을 한 번 겪고 나면, 국보라는 두 글자가 서류상의 등급에서 손에 잡히는 무엇으로 바뀐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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