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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실 새 계절, 김홍도의 예순이 걸리다

루츠·입력 2026. 05. 04. 오전 8:21:00
풍속화 너머 만년의 붓, 50건 96점으로 다시 읽는 생애
서화실이 석 달 만에 새 화면으로 바뀌었다
서화실이 석 달 만에 새 화면으로 바뀌었다 / ⓒ 브레스저널

국립중앙박물관이 4일 상설전시관 서화실에서 주제전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를 시작했다. 서화실은 전시품 전체를 석 달마다 갈아 끼우는데, 이번 교체 회차의 얼굴로 김홍도(1745~1806년 이후)가 걸렸다. 내놓은 것은 모두 50건 96점, 그중 여덟 건이 보물이다. 겸재 정선의 작품세계를 다룬 회차에 이은 두 번째 주제전시다.

종이는 오래 묵으면 빛을 삼킨다. 서화실의 조도가 낮은 것은 그 때문이고, 관람객은 어둑한 통로를 지나 유리 앞에 서야 비로소 먹의 농담과 담채의 옅은 살구빛을 알아본다. 김홍도의 그림은 그 어둠 속에서 오히려 소리가 난다. 씨름판의 웅성거림, 무동의 장단, 만월대 잔칫상에서 오갔을 술잔 부딪는 기척이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온다.

회화2실이 이번 전시의 중심이다. 보물 '단원풍속도첩'은 전체 25점 가운데 '무동'과 '씨름' 등 11점만 나왔다. 나머지를 아끼는 것은 종이의 수명 때문이니, 보여주는 일과 지키는 일은 한 화첩 안에서도 늘 서로를 밀어낸다. 열한 점이라는 절제는 그 밀고 당김의 결과다.

정작 눈이 오래 머무는 것은 예순의 붓이다. '기로세련계도'는 개성 만월대에서 열린 원로들의 모임을 담았다. 잔칫상을 받은 노인이 예순네 명, 그 곁을 채운 시종과 구경꾼이 이백서른일곱 명으로 헤아려진다. 사람을 이렇게 많이 세워두고도 화면이 어수선하지 않은 것은, 평생 저잣거리를 들여다본 눈이 군중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예순에 그린 '노매도'도 개인 소장품으로 나왔다. 늙은 매화의 굽은 등걸을 그린 그림이다. 쉰한 살에 그린 '총석정도'는 동해의 돌기둥을 세운 화면으로, 그간 전시장에 걸린 적이 없던 작품으로 파악된다. 풍속화가라는 한 칸짜리 이름표가 이 지점에서 헐거워진다.

회화1실은 스승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강세황(1713~1791)과의 교류를 조명하며, 스승의 감상평이 화면에 함께 적힌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를 걸었다. 제자의 그림 위에 스승의 글씨가 얹히는 방식은 조선 화단이 세대를 이어붙이던 오래된 습관이었다. 도화서 화원으로 산수화와 화조화, 인물화를 두루 다룬 김홍도의 폭도 이 방에서 짐작된다.

회화3실에는 궁중 채색장식화와 민화가 놓인다. 경복궁 교태전 부벽화(19세기 말)와 김홍도 화풍의 '평양감사향연도' 세 점 전체, 고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문방도'가 함께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서예실에서는 조선 전기부터 근대까지 명필의 글씨를 이어 보인다. 회화가 소리를 낸다면 서예는 호흡을 보여주는 쪽이다.

이번 회차에서 처음 공개되는 물건이 하나 더 있다. 이순신의 친필 편지다. 1598년 7월 8일 물품 지원을 맡은 총관사에게 보낸 것으로, 노량해전을 넉 달 앞두고 쓴 글씨라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화가의 만년을 모아놓은 방 곁에서, 또 한 사람의 만년이 종이 위에 남아 있는 셈이 됐다.

서화실 전시품은 석 달이 지나면 또 바뀐다. 지금 걸린 열한 점의 풍속화와 예순의 그림들도 그 주기 안에 있다. 유홍준 관장은 6월 2일 박물관 극장 '용'에서 '단원 김홍도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강연한다. 만월대의 이백여 사람을 세어보는 일은 화면 앞에 오래 서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니, 서두르지 않을 시간을 챙겨 가는 편이 좋겠다.

루츠 기자 · Breath.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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