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두 달 전만 해도 배럴당 67달러선에 머물렀다. 그러다 어제 장중 106달러를 넘어섰다.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7%, 하루 2000만배럴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 흔들림 한가운데서 5245억원 규모의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을 내놨다.
편성 내역을 보면 어디에 힘을 실었는지가 선명하다. 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2205억원, 재생에너지 보급 지원 624억원. 두 항목만 2800억원을 넘어 추경 총액의 절반을 웃돈다. 금융 지원은 햇빛소득마을과 태양광·풍력 설비 설치 자금을 장기·저리로 빌려주는 데 쓰이고, 보급 지원은 주택 베란다와 건물, 학교, 전통시장 같은 생활공간으로 태양광을 넓히는 몫이다.
기름값이 오르면 화물차 운전석과 등유 보일러에서 곧장 체감된다. 3월 넷째주 전국 평균 주유소 판매가는 휘발유 리터당 1819원, 경유 1815원으로 연초보다 200~300원 이상 뛰었다. 추경에는 소형 전기 화물차 보조금을 늘리는 900억원, 등유·LPG를 쓰는 에너지바우처 수급가구에 연료비 상승분을 얹어주는 102억원이 담겼다. 저소득층 에너지 효율 개선 128억원, 섬 지역 자가발전 시설 운영 363억원도 같은 결이다.
난방을 전기로 바꾸는 항목도 눈에 띈다. 주택 난방 전기화에 56억원, 사회복지시설 전기화에 13억원이 배정된 히트펌프 사업이다. 발전·철강의 탄소 포집·활용(CCU) 사업 224억원, 산업·일자리 전환 23억원, 청년 예비·초기 창업 19억원도 함께 편성됐다. 급한 불을 끄는 돈과 산업의 체질을 바꾸는 돈이 한 장의 표에 나란히 놓인 이야기다.
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도 항목에 들어 있다. 태양광이 몰리는 시간대의 출력 제어와 계통 접속 지연을 덜어내려는 목적으로, 발전 설비를 늘리는 일과 전기를 담고 옮기는 그릇을 넓히는 일을 함께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세부 금액은 확정 공표를 기다려야 한다.

이 편성이 뒤늦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지금의 위기는 석유 수급에서 왔는데 재생에너지는 중장기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부는 사태가 길어질 경우 LNG 발전 대신 석탄과 원전을 최대한 돌리라는 방침을 내놨고, 비축유 방출을 포함한 수급 안정 조치도 가동 중이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체가 쥔 원재료가 이르면 4월 중순께 상당 부분 소진될 것이라는 증권가 전망도 나왔다.
두 이야기는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석유는 오늘의 문제이고 태양광과 풍력은 3년 뒤 오늘의 문제를 줄이는 대비다.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는 34GW 안팎으로 파악되며, 정부는 2030년까지 100GW, 그중 태양광 87GW를 목표로 잡고 있다. 남은 5년 동안 해마다 10GW 이상을 새로 세워야 닿을 수 있는 선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제 제주 타운홀 미팅에서 에너지 위기 대책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245억원은 기후부 본예산 19조1662억원의 2.7%에 그친다. 새로 판을 짜는 돈이라기보다, 세워둔 계획을 조금 더 빨리 굴리는 윤활유에 가깝다.
추경안은 국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최종 확정된다. 그사이 시민이 쥘 수 있는 손잡이는 베란다 태양광 쪽에 있다. 보급 지원 624억원이 통과되면 지자체 신청 창구에서 설치비 부담이 한 단계 내려가는데, 신청은 대체로 예산 소진 순으로 마감된다. 국제 유가에 흔들리지 않는 전기 몇 킬로와트를 집 난간에 붙여두는 일은, 생각보다 문턱이 낮다.




